(펌) 시사IN

김재규의 변호사, 최태민과 박근혜를 말하다

정희상 기자 입력 2016.11.25 10:11 댓글 849

강신옥 변호사(사진)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 중정 부장의 변호를 맡았다. 전두환 신군부는 최태민·박근혜 관계를 법정에 제출한 강 변호사를 박근혜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하려고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 영애와의 잘못된 만남 때문이다. 이 커넥션을 가장 잘 아는 이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당시 김재규 부장은 최태민과 박근혜의 ‘부적절한 관계’도 10·26 사건을 일으킨 한 원인이라고 꼽았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부장은 그 자세한 내용을 변호인단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김재규 부장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80)를 만났다.

김재규 부장 입에서 최태민과 박근혜 관계가 어떻게 나왔는가?

사형당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28일 김재규 부장을 면회 갔더니 최태민 얘기를 처음 꺼냈다. 박정희 대통령을 쏜 이유로 구국여성봉사단의 망국적 전횡도 작용했다면서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 할 놈이다”라고 분개했다.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는 최태민이고 명예총재가 박근혜였다. 최태민이 이 단체에 운영위원 30명을 두고 기업을 갈취하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을 성추행하니까 원성이 자자해 중앙정보부(중정)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정밀 조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시사IN 이명익

조사 내용이 뭐라고 하던가?

(강 변호사는 보관 중인 김재규 부장 면회 노트를 펼쳐 읽으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재규 부장은 당시 검사로 중정에 파견 나와 특명수사를 담당하는 6국장(안전국) 백광현에게 구국여성봉사단 조사를 지시했다. 백 검사는 최태민을 불러다 철저히 조사했다. 조사 결과 최태민은 자칭 ‘태자마마’ ‘도사’라고 하면서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큰딸 박근혜를 잘 지켜달라고 당부해 박근혜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최태민의 편지를 받은 박근혜도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찾아올 테니 도움 받으라고 했다고 화답하면서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인연으로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 그 뒤 박근혜는 최태민이 여성단체인 구국여성봉사단 총재가 되는 데도 개입하고, 최태민이 기업들로부터 양로병원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수억원대 돈을 뜯어내는 데도 관여했다. 박승규 청와대 민정수석도 별도로 최태민을 조사하니 영애를 등에 업고 기업체로부터 수십억원을 갈취한 사실이 적발돼 김재규 부장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고 하더라. 김재규 부장은 최태민이 여성 정치 지망생 6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내용까지 조사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정보를 취합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최태민과 구국여성봉사단을 정리하고 영애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박근혜 말만 듣고 보고를 묵살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부장과 영애를 앉혀놓고 친국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김재규 부장이 보고하니 박 대통령이 “내가 직접 근혜를 불러 친국하겠으니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 구국여성봉사단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심지어 더 개악시키는 것을 지켜보고 김재규 부장은 절망했다고 한다. 친국을 거친 박정희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비리를 알아내고서도 구국여성봉사단을 정리하기는커녕 최태민을 총재직에서 명예총재로 바꾸고 대신 박근혜에게 직접 총재직을 맡겼다는 것이다(구국여성봉사단은 1976년 4월 만들어졌다. 최태민은 총재를, 박근혜는 명예총재를 맡았다. 1977년 9월12일 친국을 하고, 구국여성봉사단은 1979년 5월 사단법인 새마음봉사단으로 바뀐다. 박근혜가 총재를, 최태민은 명예총재를 맡았다). 이런 조치를 보고 다시 김재규 부장이 박 대통령에게 “구국여성봉사단이 기업에서 돈을 받아 양로병원을 세운다는데 일본 등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그런 것은 적십자사에서 맡아야 할 일이지 영애가 간여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라고 재고를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김재규 부장은 이것도 10·26 거사의 동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시사IN 자료
ⓒ시사IN 이명익 1979년 12월20일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공판에서 김재규 부장(맨위 왼쪽에서 두 번째)이 재판을 기다리는 모습. 김 부장은 재판 과정에서 강신옥 변호사에게 ‘장부한(丈夫恨)’이라는 한시를 직접 적어 주었다(위). 총 28자로 구성된 7언절구 형식이다.

김재규 부장 변론을 맡은 계기는?

김 부장이 나를 지명하기도 했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변호인을 맡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김재규 부장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10·26 당시 김재규 부장에게 희생된 이들은 박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과 경호실 직원 4명이었다. 생명의 가치는 다 소중하지만, 박정희 때문에 죽은 어마어마한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작은 희생으로 큰 혁명적 대의를 가져온 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유신 독재로 민주주의가 신음하고 수많은 학생·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김 추기경은 김재규 부장의 10·26 거사가 더 큰 희생을 막은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인권변호사들에게 특별히 김재규 부장 변론을 당부하기도 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나를 불러 격려해주었다. 나중에 김재규 부장과 부하들 가족이 구명 탄원을 위해 추기경을 찾아갔을 때도 보듬고 위로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족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뒤 “내가 힘이 못 미쳐 할 말이 없다”라고 슬퍼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 김재규 부장과 전두환 합수부장 사이에 감정싸움이 있었다는데?

애국심을 기준으로 볼 때 전두환은 김재규 부장의 발가락 때만도 못한 수준이라는 게 그 당시나 지금이나 내 판단이다. 당시 전두환은 김재규 부장에게 ‘왜 거사 후 자결하지 않았느냐,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심이 있었던 거 아니냐’고 힐난했다. 내가 이 내용을 면회 가서 전했더니 김재규 부장은 “쓰레기가 많아서 쓰레기를 치우고 자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쓰레기는 부패한 공화당 정치인들과 최태민 같은 이들이었다. 또 그는 전두환을 상대로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요”라고도 했다. 내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뒤 1989년 5공 청문회장에서 장세동씨를 심문할 때 “전두환에게 가서 자결하라고 전하라. 김재규 부장에게 자결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면 그 뒤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 전두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맞다고 보지 않느냐”라고 질타했다.

ⓒ연합뉴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박근혜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규 부장 변론 과정에서 고충은 없었나?

대법원이 1980년 5월20일 김재규 부장에 대해 사형을 확정 판결했다. 이날 내가 대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하고 나왔다. 보안사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서빙고 분실로 끌고 갔다. 그 자리에서 보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었다. 내란사범 김재규 부장 구명운동을 했다는 점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끄집어낸 것이 박근혜씨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혐의였다. 변호인으로서 정당하게 수행한 변론활동이라고 맞서서 더 이상 처벌은 받지 않았다.

당시 혐의가 박근혜 명예훼손이었다면 신군부도 최태민과 박근혜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유신 시절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전두환이 청와대에 출입할 때 박근혜가 ‘오빠 오빠’ 부르며 따르던 사이였다고 한다. 김재규 부장 변론 과정에서 최태민과 박근혜 사이를 들춰내 법정에 제출하자, 신군부는 박근혜 명예훼손 혐의로 나를 처벌하려고 한 것이다. 김재규 부장은 사형당하기 전까지 나라의 암적 존재인 최태민을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뒤 전두환 정권은 박근혜의 요청을 받고 최태민을 사실상 풀어줬다. 신군부는 최태민에 대해 낱낱이 조사하고도 한동안 강원도에 ‘유배’만 시켰다. 박근혜의 최태민 구명 호소를 전두환이 들어준 것으로 안다.

김재규 부장의 유언은?

자신의 죽음을 밑거름으로 민주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자기만 죽이면 되지 왜 부하들을 사형시키느냐고 호소했으나 신군부는 전원 사형을 집행했다. 김재규 부장은 다섯 명 부하들과 한자리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지만 이마저 신군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부하들의 유해는 보안사에 의해 동두천·파주·벽제 등에 흩어졌고 김재규 부장 재산도 몰수당했다. 이후 사형당한 가족들끼리는 서로 왕래하면서 상처를 어루만지고 명예가 회복될 한 가닥 희망 속에 지냈다. 김재규 부장의 부인은 다섯 부하들 자녀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김재규 부장은 부인에게 비구니가 되라고 했다는데?

김재규 부장은 생전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사형당하기 전 부인에게 비구니가 되라고 유언을 남겼다. 부인은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면서 천주교로 개종해 세례를 받았다. 남편의 유언을 못 지킨 셈이 됐다. 동생 김항규씨는 10·26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대한불교 불승종에 귀의했다. 형이 사형당한 뒤에는 경북 봉화에 있는 현불사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했다. 1985년 현불사에 위령탑이 들어서자 전두환 정권이 김재규 부장 위령탑으로 간주해 파괴해버렸다.

10·26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재규 부장 부하 5명도 함께 변론했는데?

부하들도 의연했다. 사형당하는 순간까지 국민과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는 행동이라고 자부심을 표명했다. 특히 육사 18기 선두주자였던 박흥주 대령은 아주 순수하고 청렴한 참군인이었다. 현역 군인 신분이라 군사법정에서 단심제가 적용되었다. 김재규 부장 사형 판결이 나기도 전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중정 의전과장이었던 박선호씨는 사형 전에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부장님 지시에 따르겠다”라고 최후 진술을 했다. 해병대 출신인 이기주씨(중정 경비원)는 최후진술에서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말로 김재규 부장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정보부 비서실 경비원이었던 김태원씨도 재판 과정 내내 보여준 의연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1980년 3월4일 갑자기 김태원이 나에게 특별면회를 신청해 찾아갔더니 “변호사님, 와전옥쇄라는 말이 있던데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기왓장으로 온전하기보다는 깨어진 옥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200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과 악연이 있었다는데?

당시 내가 정몽준 후보 캠프를 도왔는데, 정몽준 후보가 초등학교 동기생인 박근혜 의원의 도움을 받고 싶어 했다. 박근혜 의원이 “아버지를 죽인 김재규 부장을 변호한 강신옥 의원과 한 캠프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나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느냐”며 나를 비판하더라고 했다. 정 후보는 박근혜 의원을 만날 때마다 그 얘기를 꺼내더라며 난감해했다.

그 무렵 박근혜 대통령과 테니스도 쳤다고 들었다.

당시 정몽준 후보가 박근혜 의원과 나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셋이서 테니스를 친 일이 있었다. 그때 한 여성지 기자가 나에게 박정희의 여자 문제를 취재하러 왔기에 변호인 접견 때 정리한 내용을 보여준 적이 있다. 기사화 말라고 해서 안 쓴다고 해 잊어버리고 있는데 20여 일 뒤 신문에 광고가 났다. ‘강신옥 변호사가 20년 만에 박정희 여자관계 폭로했다.’ 그 기사를 보고 박근혜 의원이 정몽준 후보에게 불평했다. 정 후보가 나더러 박근혜 의원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왜 사과하느냐, (박정희의 여자관계) 내용 자체가 사실인데 왜 사과하느냐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만날 때마다 다섯 차례나 사과하라고 해서 내가 정몽준과 결별하고 나왔다.

김재규 부장 재조명의 필요성은?

김재규의 10·26 정신은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지 않고는 유신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본 것,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한 것이다.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면 김재규 부장의 거사 정신은 바로 세워져야 한다. 아직은 김재규 부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적고 단결도 안 되는 반면 박정희 지지자는 많고 또 단결도 잘되는 데다 그 딸이 대통령까지 됐으니 김재규 부장에 대한 재평가 분위기가 수그러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적으로 몰린 조선시대 사육신도 재평가받고 인정받는 데 250년이 걸렸다. 언제라도 10·26 거사 정신이 제대로 밝혀지고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다.

한 보수 단체가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세종로에 세우겠다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시점에 그런 동상 세운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존경받을 만한 면조차도 오히려 딸 때문에 망친 형국이다. 이 시점에 동상을 추진하는 것은 박근혜 지지 세력이 제대로 된 감각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느끼는 감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일가와의 뿌리 깊은 인연과 도움으로 대통령까지 됐지만 결국 재임 중 최태민 일가로 인해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만일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한 대로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내고, 최태민의 범죄를 엄벌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역사의 업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의 올바른 처리 방향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는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하야하면 헌정이 중단된다고 하는데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서 지금도 헌정 중단 사태인데 더 나빠질 일이 뭐가 있겠나. 민심이 하야라면 억지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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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은 고통이다. 하지만 오래된 경전엔 두카라고 나오는데 그것은 삶의 불완전함을 뜻한다. 삶은 불만의 연속이다. 행복은 잠시 왔다가 사라진다.

2. 고통과 불만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있는 것이 있다. 붓다는 그렇다고 고통을 없애려고 모든 욕망을 버려야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을 이해하라고 했다. 욕망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깨닫고자하는 욕망이 없다면 부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3. 고통은 끊어버릴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면 된다.

4. 팔정도. 깨달음으로 가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자비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덧없음을 이해할 때 생겨난다. 모든 것이 이어져있고 서로 섞여있음을 이해할 때 자비심이 생긴다.
이것이 존재할 때 저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생겼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이 멈추면 저것도 멈추게 된다.
왜냐하면 우주만물은 전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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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 바쁘다고 두 달 후에 올리는 목종스님 법문)

 

행복에 대한 법문

(난 깨달음에 대한 법문이 더 궁금했지만 다수결에 따라....)

 

돈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이유는, 돈 자체가 귀해서이기보다는 그것이 우리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돈을 벌려고 직장에 나가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에 쓴다.

우리는 다이아몬드나 돈이 귀하다고 여기지만 개는 어떨까요? 개에게는 돈보다 사료가 훨씬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체개고.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의 모습.

우리는 매 순간 더 나은 행복, 더 좋은 편리함을 추구한다.

 

행복이란 뭘까요? 행복이란 무엇인데 원할까요? 행복이 만족, 성취, 편안함 등등 이라고 말하지만 행복이 무언지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즐겁고 편안함이 행복이라 여긴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행복을 위해서 하는 행위다.

돈이 더 많으면 더 즐겁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나요? (얻기 더 쉬워요)

그렇다면 우리보다 돈이 더 많은 대기업 재벌들이 우리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울까요? (아니요)

그렇다면 왜 편안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그러게요...)

승진을 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한다면, 승진을 해서 직위가 더 높아지면 내가 더 행복해지고 편해질까?

직위가 더 높아질수록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네...) 

 

즐거움과 편안함이 행복인건 맞지만 우리들이 그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들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내가 그 때가 가장 즐겁고 가장 행복한 상태였다고 생각하는 시절이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입사했을 때?

결혼한 후에는 언제가 제일 행복한가요?

 

초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행복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초딩 시절보다 지금은 돈이 훨씬 많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도 더 많다. 근데 왜 지금보다 그 때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내가 지금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들이 참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그 행복을 구하는 마음이 나의 일평생을 허비하게 만든다. 지금은 그것이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죽음에 정착했을 때 그것은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윤회하게 된다.

 

무엇을 먹을 때 행복한가요? (치킨이요)

치킨에 행복이 있을까요 내가 치킨을 먹음으로써 행복이라고 여기는 걸까요? (여기는 거요)

확실해요? (네) 만약에 치킨에 행복이 있다면 지금먹고, 1시간 후에 또 먹고, 내일 또 먹고

치킨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치킨을 먹음으로써 행복이라고 여긴다면, 행복은 대상에 있는 것일까요 내 마음이 그렇게 여기는 걸까요? (마음이요)

근데 왜 여러분들은 행복을 줄거라고 여기는 대상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하나요? 더 좋은거, 더 좋은거, 더더 좋은것을 얻기 위해 여러분들은 평생 살아가요.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대상을 쫓아가야되요? (아니요) 내 마음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빠르다. 그 방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건 좋은 집, 좋은 옷, 돈에 있는게 아니다.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이 나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난 늘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욕심을 버리는 방법이 있다.

버리는 것과 버리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아까워서요)

그럼 아깝다는 것은 뭘까요?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필요하다고 여기는 한 그 욕망과 욕망의 대상을 버릴 수 없다. 그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행. 보살행.

이것은 내가 더 쉽게, 더 자주, 본래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실천방법이다.

주고자 하는 마음이 큰 만큼 나는 행복하다.

행복은 조건에 있지 않고 대상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고, 불편함이라고도 여기지 않으면 어떨까요? 구할필요도,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구하려고 하는 그 대상들에게서 하나둘씩 벗어나게 된다면 욕망이 모두 소진된 상태, 즉 열반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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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공동설

우주 2016. 10. 20. 18:48

 

 

지구의 속이 비어있다는 지구공동설은 중세 철학자인 브루노(1548-1600)가 가장 처음 주장하였다.

그 후, 헬리 혜성을 발견한 헬리(1692) 스위스의 고등수학자 오일러, 1906년 미국의 윌리암 리이드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다.

마샬 가드너는 보다 신빙성있는 자료로 1920년에 그의 저서 '지구 내부로의 여행'에서 지구는 내부가 꽉 찬 구체가 아닌 텅 빈 구체이며, 내부에 또 다른 태양이 존재하고 고도의 문명세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드너가 주장하는 지구공동설에 따르면 지구는 대폭발 후 불덩이가 소용돌이 회전운동을 하여 탄생한 것이고 회전 원심력에 의해 무거운 물질은 바깥쪽으로 쏠려 두껍고 딱딱한 지각을 구성하였으며, 속은 텅 빈 형태로 굳어졌다고 한다.

지구의 자전속도는 매시간 1600km 초당 27km가 넘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으므로 지구의 속이 암반과 지층으로 가득차 있다면 지구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야한다.

반 알렌이 발견한 방사능 복사띠는 지구공동설을 뒷받침한다.

1950년 5월 칠레 대지진, 1964년 5월 앵커리지 대지진 등 당시 대지진의 충격으로 지구가 거대한 종이 울리듯 울리는 현상이 관측된 것도 지구의 속이 비었다는 증거로 보고있다.

많은 학자들이 실제로 지구 뿐 아니라 달, 화성, 금성 등 모든 행성의 속이 텅 비어있다고 말한다. 아폴로 12호, 14호는 이미 운석이 충돌할 때 달이 거대한 종처럼 울려서 속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었다.

또한, 최근 허블 천체망원경으로 촬영된 화성의 극지부분에는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외계인 접촉자인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는 이러한 정보를 NASA와 미국정부의 수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은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내부의 중심에는 하늘 가운데에 내부태양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원시지구의 불덩어리 일부와 빛을 내는 물질 일부가 남아 텅빈 지구내부의 중심태양이 된 것이라고 한다. 현대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오로라는 내부태양의 반사현상이며, 각 혹성에서 관측되는 극광현상도 같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지구를 포함한 모든 혹성의 양극에는 형성당시 자전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공동으로 통하는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구의 중력은 지구 가운데 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외각 또는 표피 내부의 한 가운데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68년 11월 23일 위성 ESSA 7호가 찍은 북극사진에는 구멍이 뻥 뚫려있는 북극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특수한 에너지로 된 4차원 방호막에 의해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장막은 1년에 수 차례 열리며, 그겡 있는 구멍 뿐 아니라 바다에 약 8개가 더 있다.

결론적으로 남극과 북극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어 지표와 지구 속을 연결한다는 것이다.

1997년 1월 16일 국내 각 일간지에는 AP연합통신발 기사로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40여년간 군사목적으로 130만회에 걸쳐 수집한 북극바다에 관한 비밀정보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내용을 보면 북극해의 물이 그린랜드와 노르웨이 북단사이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통로인 이른바 '굴뚝'이 있다. 이 '굴뚝'은 폭이 수km 밖에 안되고 지속시간도 짧아 열려져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어려우나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개폐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북극바다 밑에 지구 속와 지구 밖이 통하는 입구인 '물굴뚝'이 실제 개방되어 있으며, 북극해의 조수가 이 구멍을 통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지구 속과 지구 밖으로 뒤바뀐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공식 확인해 준 것이다.

지구공동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지표밑 수백 km의 지구 중심부에서 1994년 10월부터 미 우주항공국으로 복잡한 수학적 암호로 된 전파를 보내오고 있다는 소식이 NASA 소식통을 인용, 외신과 국내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1995.12.17 스포츠서울)

지하세계의 고지능 생명체가 대화를 하려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며, 과학자들이 이 암호를 푸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지구과학으로는 지하세계로 전파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없는 반면에 지하문명은 지구보다 훨씬 기술이 발달한 수준에 있고, 전파를 보낸 주체는 우리를 잘 알고 잇지만 우리는 잘 모른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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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공동설 꿀잼

고도로 발달된 문명세계의 외계인들이

땅따먹기를 위해서라면 자연파괴, 약탈, 침략과 전쟁, 전쟁, 또 전쟁밖에 할 줄 모르는 지구인을 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미개하다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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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염불로 정토에서 다시 만납시다.


청담스님이 옛 아내에게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 동안 염불공부 잘하셔서 죽을 때에 귀신한테 끌려서 삼악도로 가지 아니하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님 회상으로 가실 자신이 섰습니까?
모진 병 앓고 똥이나 싸버리고 정신없이 잡귀신들에게 끌려가서 무주고혼이 되어서 밤낮으로 울고 천만겁으로 돌아다니면서 물 한 그릇도 못 얻어먹는 불쌍한 도가비 귀신이나 면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다 늙어서 서산에 걸린 해와 같이 금방 쏙 넘어가게 될 형편이 아닙니까? 살림걱정, 아이들 걱정 이 걱정 저 걱정 다 해봐야 보살에게는 쓸데없는 헛걱정이오, 죄업만 두터워질 뿐이니 다 제쳐놓고 염불공부나 부지런히 하시오. 앞날이 급했지 않습니까?
내나 보살이나 얼마 안 있어 우리들이 다 죽어서 업을 따라서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 아닙니까?
부디 쓸데없는 망상은 다 버리시고 염불만 부지런히 하셔야 하지요. 곧 떠나게 된 인간들이 제 늙은 줄도 모르고 망상만 피우고 업만 지으면 만겁의 고생을 어찌 다 감당할 것이오?
극락세계만 가놓으면 우리가 만날 사람은 다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다 집어치우고 자나 깨나 나무아미타불, 급했습니다. 부탁입니다. 절하고 빕니다.
늙은 중 합장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내며 청정 승단의 재건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던 청담 순호(靑潭淳浩, 1902~1971). 1954년 식민지 불교의 청산을 기치로 본격화된 정화운동 중심에는 그가 있었고,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꾼 것도 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청담의 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잇따른 승려대회를 비롯해 데모와 할복사건, 유혈충돌, 법정투쟁 등 숱한 희생과 우여곡절. 그 속에서 종단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청담은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옛 아내를 떠올리고는 했다. 남편과 막내딸을 불문(佛門)으로 떠나보내고 온갖 번민과 근심을 끓이고 산다는 그녀의 소식을 접할 때면 팔만사천 번뇌를 여의었다는 청담조차 모래 위에 부어진 물처럼 아픔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자물쇠도 열쇠도 없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괴로워할 그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 진주 호국사에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그에게 ‘목마름이야 물로 다스릴 수 있지만 마음이 탈 때에는 무엇으로 끌 수 있느냐’는 한 노스님의 말을 듣고 시작된 출가에의 의지. 대를 이어야할 2대 독자가 삭발출가하려 하자 아버지는 서둘러 그를 혼인시켰고, 청담과 차점이(1905~1988)와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됐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넉넉지 못한 농가로 시집와 소처럼 일하고 양처럼 순종했던 여인. 자신이 백양사로 해인사로 구름처럼 떠돌 때에도 그저 지켜만 보고, 일본에서 출가자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착한 여인. 고성 옥천사로 출가한 청담이 고향을 찾아가 이혼수속 얘기를 꺼냈을 때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아내의 야윈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기왕지사 출가했으믄 스님다운 스님이 되셔야지예. 지야 뭐, 당신이 하자는대로 해드리겠심니더.”

1930년 봄, 고향 낙성법회에 법문 왔다가 죽자 사자 매달리는 어머니에 이끌려 다시 찾은 고향집. 마지막 소원이라며 “가문 이을 씨앗 하나만 심어 놓고 가라”는 어머니의 한 맺힌 절규에 청담은 목건련을 떠올리며 ‘불쌍한 어머니, 저 분을 위해서라면 지옥엔들 가지 못하랴.’라고 마음을 굳혔다. 동시에 아들을 낳지 못해 주변의 핍박과 자괴감에 두고두고 시달릴 젊은 아내에게 옛 지아비로서 마지막 의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룻밤의 파계. 첫 닭이 울기도 전 버선도 신지 않은 채 속가를 뛰쳐나온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아! 수행자인 내가…. 수미산 같은 이 죄업을 어찌 다 씻을고.’ 가혹하리만치 매서운 청담의 참회와 인욕수행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홑옷에 맨발 차림. 청담의 눈물겹도록 처절한 만행은 덕숭산, 오대산, 설악산, 묘향산을 거쳐 북간도로까지 이어졌다. 여윈 볼을 할퀴고 지나가는 칼바람에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을 때도 늘 맨발이었다. 살은 얼어 찢겨나가고 발은 쩍쩍 갈라져 피가 솟았다.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이 있으면 청담 스님이 다녀간 자리’라는 말이 수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늙은 홀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출가의 길은 선택한 청담은 가족들의 고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그쳐 피나는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청담이 서른 넷 이른 나이에 묘향산 설령대에서 오도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모든 부처와 조사는 어리석기 그지없어
어찌 현학의 이치를 깨우쳤으랴.
만약 누가 나에게 한 소식 한 바를 묻는다면
길가에 서 있는 고탑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하리라.

오랫동안 괴롭혀오던 마음의 갈증이 해갈된 청담. 하지만 이 무렵 그에게 들려온 속가의 얘기는 그를 안타깝게 했다. 옛 아내가 또 딸아이를 낳았으며, 이로 인해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하고 있다는 것. 청담은 어머니가 더 이상 죄업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늙은 홀어머니를 직지사 서전암으로 모셔와 출가토록 했다. ‘아들 스님’의 당부대로 비구니 성인(性仁)은 묵은 한을 내려놓고 열심히 염불정진 했다. 훗날 어머니가 임종을 얼마 앞두고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며느리도 사찰에 머물며 임종 때까지 시어머니를 돌봤다는 얘기를 들은 청담은 슬픔에 앞서 두 여인의 화해에 안도의 한 숨부터 먼저 내쉬었다.

청담과 차점이가 다시 만난 건 몇 해 뒤인 1943년 여름. 복천암에서 생식을 하며 안거수행을 하던 청담은 사월초파일날 상주경찰서로 연행됐다. 잦아들지 않는 독립운동에 골머리를 앓던 일제는 기미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청담이 북간도에 간 이유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법(法)을 찾아 수월을 만나러 갔다는 그의 항변에도 연일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인욕제일 청담이건만 두 달여 계속된 잔학한 고문에 결국 실신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사경을 헤매야 했다. 이 때 멀리 진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달려온 이가 차점이였다.
“시님, 시님…. 이게 뭔 일이란 말입니꺼.”

낡고 찢긴 옷에 피골이 상접한 청담의 모습에 차점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마지막 남아있던 땅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청담을 경찰서에서 빼내 상주포교당으로 옮겼다. 차점이는 청담의 곁에 머물며 24시간 지극정성으로 병구완을 했다.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청담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고 조금씩 거동도 가능해졌다. 청담은 희끗희끗 흰머리가 돋기 시작한 옛 아내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성껏 들려주었다. 차점이는 무뚝뚝하기만 하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지아비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냥 이렇게 세월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남편이 아니라 바람과 구름이 되어 떠도는 수행자였다.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자 청담은 또다시 운수행각에 나섰고, 차점이는 그런 청담에게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바랑을 조심스레 건넸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염불도 지극정성으로 하도록 해요.”
“예, 시님…. 알겠심니더.”

다시 몇 해가 흘러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이른 1945년 초, 청담은 차점이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젊은 남자는 징용으로, 처녀는 정신대로 끌고 가고 있으니 둘째 딸을 데려다가 스님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파계를 해가며 까지 나은 아이, 청담은 어쩌면 이 또한 숙세부터 이어져온 불연(佛緣)이라는 생각에 절친한 도반 성철의 도움을 얻어 머리를 깎도록 했다.

그러나 차점이는 막상 자신의 뜻대로 딸이 출가했건만 어린 딸이 절 생활은 잘 하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한시도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딸 묘엄이 조선 최고의 강백이라는 운허의 문하에서 공부할 때도, 뒤늦게 동국대에 입학했을 때도, 청도 운문사로 내려가 강원을 개설해 학인들을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차점이는 수시로 딸이 있는 곳을 찾았고 청담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늘 안타깝기만 했다. 청담은 절을 찾아 온 차점이에게 대도성(大道性)이라는 법명을 주고 걱정과 욕심을 내려놓을 것을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조계종 종정직을 사퇴한 이듬해인 1968년, 청담은 옛 아내에게 간절한 편지를 띄웠다. 이제는 이런 저런 근심걱정 다 접어놓고 자신의 업장이나 닦으라고, 그래서 훗날 정토에서 다시 만나자고….

1971년 11월 15일 청담이 홀연히 열반에 들자 대도성은 자신의 삶을 지탱했던 대들보가 무너지는 듯했다. 십수 년 간 조석으로 기도하고 염불도 했건만 가슴 한 켠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몇 해 뒤 보다 못한 묘엄은 대도성을 절로 모셔와 손수 머리를 깎아 출가토록 한 뒤 대도(大道)라는 법명과 함께 스님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대도는 절에서 생활하며 옛 남편의 뜻을 따라 염불과 경전독송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세상사가 꿈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다’던 청담의 말을 비로소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1988년 5월 12일 마침내 대도는 고단한 삶의 여정을 접고 무정했던 남편, 인자했던 삶의 스승 청담이 있는 아미타불 회상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mitra@beopbo.com


※청담 스님이 대도성 보살님께 보낸 편지는 현재 서울 도선사 청담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그러나 편지에 날짜가 기록돼 있지 않아 청담 스님이 정확히 언제 보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당시 대도성 보살님과 같이 생활했던 손자인 부산대 철학과 김용환 교수는 1968년에 할머니가 청담 스님으로부터 그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으며, 편지의 내용으로 미뤄보더라도 그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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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의 가피


372

"그리고 선남자야, 교살라국에 5백이나 되는 도둑떼가 있어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재물을 겁탈해 피해가 매우 심했으므로, 그 포학함을 걱정한 비사닉왕이 군을 동원해 이를 체포하고, 그 눈을 도린 후에 숲 속에 버렸다. 그런데 이 도둑들은 이미 과거의 부처님 밑에서 여러 선근(善根)을 심은 사람들이었으므로, 실명(失明)하여 큰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무불타(南無佛陀) 나무불타! 지금 우리를 구해 주는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때 나는 기원정사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서늘한 바람이 향산(香山) 속의 갖가지 약초의 향기를 불어와 그 눈자위 안에 가득 차게 해주었고, 그로 인해 도독들은 눈이 다시 생겨 전과 다름없게 되었다. 도둑들은 눈을 떠 여래가 그 앞에 서서 설법하는 것을 보자, 가르침을 들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켰다."
[涅槃經]

*나무불타: 진심으로 삼보에 귀순하여 이를 믿는 일.

373

"선남자야, 조달(調達)이 탐심을 내어 족한 줄을 모르고, 우락(牛酪)을 너무 많이 먹은 적이있었다. 그래 머리가 아파 큰 고통을 당해서 어쩔 바를 모르다가, 문득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외쳐 댔다. 우선니성에 있던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자비심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 때 조달은 내가 그곳에 나타나, 손으로 머리와 배를 문지르면서 소금 넣은 뜨거운 물을 주어 먹게 했기 때문에 곧 병이 나았으나, 내가 정말 그곳에 가서 그의 머리와 배를 만지고 더운물을 먹였던 것은 아니다. 선남자야, 마땅히 알라. 다 이는 자선근(慈善根)의 힘이 그자로 하여금 이런 일을 보게 한 것임을! [涅槃經]

*우락: 응고한 우유. 요구르트 비슷하나 신맛이 난다.
*자선근: 온갖 선을 낳는 근본인. 자비심.

374

제천(諸天). 제왕. 인민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잡고, 억념수지(憶念受持)하며 귀의공양(歸依供養)하여 그 불토(佛土)에 태어나기를 구하면, 그 사람이 죽어 반드시 왕생(往生)하게 된다.만약 어느 중생이 있어서 그 이름을 듣잡고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기뻐하여, 비록 잠깐 사이라도 그 지성으로 회향(廻向)해서 그 불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왕생하게 된다.
[大阿彌陀經]

375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에게 이르셨다.
"어떤 중생이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지어 온갖 악을 갖추었다 하면, 이런 어리석은 자는악업으로 말미암아 응당 악도에 떨어져 다겁에 걸쳐 무궁한 괴로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이 사람의 임종 때, 선지식이 가지가지로 위안하며 그를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 염불하기를 권했으나, 그 사람은 너무나 고통이 심해 염불할 경황이 없었으므로, 선지식은 '염불할 수 없거든 귀의무량수경(歸依無量壽經)이라 부르라'고 일렀다 하자. 이리하여 그 사람이 진심으로 소리를 끊이지 않고 십념(十念)을 갖추어 나무아미타불이라 부른다면, 부처님 이름을 부른 탓으로 염념(念念)중에 팔십억 겁의 생사죄(生死罪)를 제거하는 결과가 되어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할 것이다. [觀無量壽經]

*무량수불: 아미타불을 이르는 말. 수명을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뜻.
*십념: 여기서는 열 번 부처님을 염하는 일.

[풀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칭명(稱名)과 염불(念佛)을 구별하고 있는 일이다. 염불이란 부처님을 염(念)하는 일, 마음에 생각하여 잊지 않는 일이며, 칭명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다. 그러나 후세에 오자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칭명을 염불이라 일컫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경문(經文)에서 보아 칭명은 염불보다 격이 낮은 것이 사실이나, 그런 선업(善業)만으로도 구제될 수 있다고 한 곳에, 후세의 정토종(淨土宗)의 신앙이 생겨날 소지(素地)가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자기의 노력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불교 본래의 입장이거니와, 대승 불교에 와서 정토삼부경이 나타나자 아미타불의 절대적인 대비(大悲)에 매어달려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신앙이 일어났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것으로 끝나는 다른 종교와 달리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이 사바세계는 수도를 방해하는 조건이 너무 많으므로 정토에 태어남으로써 더 용이하게 수도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을 택하겠다
는 소망이어서,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는 여전히 윤회하는 중생임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하간 이런 신앙 태도는 본래의 그것에 비해 쉬운 길이라 해서 이행문(易行門), 부처님의 힘에 전적으로 매어달린다 해서 타력종(他力宗)이라 불러 왔다.

376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이르셨다.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있어서 항상 지심(至心)으로 부처님을 한결같이 염(念)한다면, 산림(山林)에 있거나 마을에 있거나, 낮이건 밤이건 앉았건 누웠건, 부처님들께서는 이 사람을 늘 눈앞에 있는 듯 보고 계시리라." [涅槃經]

377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부처님을 염(念)하는 자는 사람 속의 분타리화(芬陀利華)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 훌륭한 벗이 되어, 도량(道場)에 앉아 부처님들의 집에 태어나게 해주느니라." [觀無量壽經]

*분타리화: 백련화

378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내가 열반에 든 후에 제천(諸天)과 세상 사람들이 내 이름과 나무제불(南無諸佛)을 부른다면, 그 받는 바 복덕이 무량할 것이다. 항차 다시 계념(繫念)하여 부처님들을 염(念)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여러 장애를 없애지 못하랴."
[觀佛三昧經]

379

항상 염불하는 사람에게는, 여러 사견(邪見)이 파고들 편의가 없느니라.
[無量門微密持經]

380

내가 중생들을 관찰컨대, 부처님을 염(念)치 않는 탓으로 악취(惡趣)에 떨어져 생사의 윤회를 받고 있다. 만약 이를 깨달아 길이 부처님을 염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환과(不還果)를 꼭
얻어 미혹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으리라. [本事經]

*불환과: 뒷걸음치는 일이 없는 자리. 소승불교에서 아라한 자리에 이르는 차례를 나타내는사과 중의 세 번째의 과(果). 욕계의 온갖 번뇌를 끊어 버렸기에 욕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천상에 태어나는 자리.

381

만약 지심(至心)으로 계념(繫念)하고 단좌정수(端坐正受)하여 부처님의 육신을 관상(觀想)한다면, 이 사람의 마음은 불심(佛心)과 같아져 부처님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번뇌 속에 있을지라도 여러 악의 가리우는 바가 되지 아니하며, 내세 어느 땐가는 큰 가르침의 비를 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觀佛經]

382

만약 부처님의 이름을 마음에 지녀 겁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지혜가 있어서 첨곡(諂曲)함이 없다면, 늘 부처님들 앞에 있게 되리라. [十二佛名經]

383

만약 사람이 있어서 날마다 여래의 이름과 공덕을 일컬어 말한다면, 이런 중생들은 능히 어둠을 떠나 점차로 온갖 번뇌를 불살라 버릴 수 있으리라. [寶積經]

384

부처님을 삼가 잊지 않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생사에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한 번이라도 '나모불타대자비'를 부른다면, 이런 사람들은 생사의 세계를 마칠 때까지 선근(善根)이 다하는 일 없이, 천(天). 인(人)중에서 부(富)와 행복을 항상누리고 마지막에는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될 것이다. [般若經]

*반열반: 뛰어나고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 또 석존의 위대한 죽음. 여기서는 전자의 뜻.

385

정반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염불의 공덕은 그 모양이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부왕(父王)에게 말씀하셨다.
"40유순(由旬) 평방이나 되는 이란(伊蘭) 숲 속에 한 그루의 우두전단(牛頭 檀)이 있다 할 때, 그 싹이 흙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으면 이란의 숲은 악취로 가득하여 향기라곤 없을 것이고, 그 꽃이나 열매를 먹는 자는 발광한 끝에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전단 싹이 점점 자라나 의젓한 나무를 이루면, 향기가 대단해서 마침내 이 숲을 일변시켜 온통 향기롭게 함으로써, 보는 사람은 누구나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온갖 중생 이 윤회속에 있으면서 염불하는 마음도 이와 같으오니, 오로지 계념(繫念)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필시 부처님 앞에 태어나고, 한 번 왕생(往生)하고 나면 모든 악을 고쳐 대자비를 이룸이, 저 향목(香木)이 이란 숲을 고치는 것 같사오리다." [觀佛三昧經]

*이란: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 씨는 약간의 독소를 지니고 있고, 기름을 짠다. 악취가 심한독초라 하여 전단에 대립시켜 향기를 내는 향목.

386

미란왕이 나한(羅漢) 나선비구(那先比丘)에게 물었다.
"세상에 있으면서 백 년이나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임종 때 염불하면, 죽은 후 천상(天上)에 태어난다 하셨습니다만, 나는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또 한 번만 살생(殺生)을 해도 죽어서 니리(泥犁)에 떨어진다 하셨습니다만, 나는 이것도 믿지 않습니다."
나선비구가 왕에게 물었다.
"사람이 조약돌을 들어 물위에 놓으면 뜨겠습니까, 가라앉겠습니까?
"물론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백 개의 암석을 가져다가 배 위에 놓은 경우, 그 배가 가라앉겠습니까, 어떻겠습까?"
"가라앉지 않습니다."
"배에 실린 백 개의 암석이 배로 말미암아 아니 가라앉는 것같이 사람이 대악(大惡)을 지었
대도 잠깐 염불하면, 그 공덕에 의해 니리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날 것이니, 어찌 믿을 일이 못 되겠습니까? 또 작은 돌도 가라앉는다 함은, 사람이 악을 범하고 불경(佛經)의 가르침을 모르면 죽어서 니리에 떨어지는 비유니, 이 또한 어찌 믿을 것이 못 된다 하시겠
습니까?"
왕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那先比丘經]

*니리: 지옥을 이른다.

387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무수한 문이 있다. 마치 세상의 길에 험난한 길, 쉬운 길이 있어서 육로(陸路)를 걷기는 어렵고 수로를 배로 가면 쉬운 것같이, 보살의 길에도 근행정진(勤行精進)이 있는가 하면, 신방편(信方便)의 이행도(易行道)를 통해 불퇴위(不退位)에 속히 이르는방법도 있다. 만약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속히 이르고 싶거든,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불러 받들어야 한다. [十住毘婆娑論]

*신방편: 신심의 방편
*이행도: 타력으로 쉬운 길.

388

"십불(十佛)의 이름을 듣고 마음에 새겨 지니면 무상(無上)의 보리에서 퇴전(退轉)치 않는 것과 같이, 불퇴전을 얻게 하는 다른 부처님의 이름이 있는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오로지하여 염(念)한다면, 역시 불퇴전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자세히 설명하자면, 무량수불. 세자재왕불. 사자의불. 보덕불. 상덕불. 전단향불. 무외명불. 향정불. 보현불. 보상불(寶相佛)등 백여 세존께서는, 시방(十方)의 청정 세계에서 모두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 억념(憶念)하고 계시다. 그 부처님의 본원(本願)에 '만약 사람이 나를 염(念)하여 스스로 귀의해 오면, 반드시 정(定)에 들어 무상(無上)의 보리를 얻게 하리라' 하신 까닭에, 다 아미타불을 억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어서 이 부처님의 무량한 힘의 공덕을 염한다면, 곧 정(定)에 반드시 들어가게 들것이다."
[十住毘婆娑論]

[풀이]

여기에 인용된 본원은, 문장은 약간 다르지만 11의 필지멸도원을 가리킨다. 그리고 다른 부처님이 아미타불을 억념한다는 것은 이상할지 모르나, 17에 제불청양원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무량수불은 아미타불의 이명(異名)이거니와 이것이 별개의 부처님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밀교에서는 태장계의 부처님으로서는 무량수불, 금강계의 부처님으로서는 아미타불을 세워 구분하고 있는데, <십주비바사론>이 나타날 당시의 인도에서도 별도로 보는 견해가 있은 것 같다.

389

저 부처님(아미타불)의 본원의 힘을 관(觀)하면, 기대에 어긋나는 자가 없어서 능히 공덕대보해(公德大寶海)를 총족시키게 된다. [淨土論]

*공덕대보해: 공덕의 무량함을 바다에 비유한 것.

390

무량수불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때 어떤 방편에 의해서건 내 이름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내 나라(淨土)에 태어나게 할 것이니, 이는 내가 일찍이 발원(發願)한 바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수승(殊勝)한 원이 달성되었거니, 다른 세계로부터 내 앞에 와서 태어나는 중생은 반드시 퇴전함이 없게 할 것이다. 만약 보살이 있어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원하거나, 그들의 나라에 내 나라같이 만들고자 원하거나, 또는 내 이름을 가지고 많은 중생을 해탈시키고자 한다면, 그를 빨리 극락세계로 불러 내 옆에 있게 함으로써 천만억불을 공양케 하리라." [梵天無量壽經]

391

무량수불에게는 8만 4천의 상(相)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상에는 각기 8만 4천의 수형호(隨形好)가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호(好)에는 다시 8만 4천의 광명이 있어서, 그 하나하나의광명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비치사, 염불(念佛)하는 중생을 섭취(攝取)해서 버림이 없으시다. [觀無量壽經]

392

중생이 있어서 무량수결정광명왕여래(無量壽決定光明王如來)의 이름을 듣고 진심으로 백 여덟 번을 칭념(稱念)한다면, 단명한 사람의 목숨이 늘어나리라. [光明經]

393

응당 계념(繫念)하여 부처님의 형상을 염(念)하며 미륵(彌勒)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런 사람들은 일념(一念)사이에 팔계재(八戒齋)를 지니게 되리라. [彌勒上生經]

*팔계재: 하루 밤낮을 한정하여 재가신자가 지킬 것이 요구된 계(戒). 생물을 안 죽인다. 훔치지 않는다. 성교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술을 안 마신다. 몸치장을 안 하고, 노래나 춤을 듣고 보지 않는다. 높고 푹신한 침대에서 안 잔다. 낮 이후에는 먹지 않는다. 이것은 일반 신자에게도 하루 동안 승려 생활을 시키는 형태를 취한 것으로 포살(布薩)이 있는 날, 즉 매월 8일. 14일이나, 15일. 23일. 29일이나 30일에 시행되었다. 포살이란 한데 모여 계(戒)를 어긴 일이 없는가 반성하는 행사다.

394

만약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사 큰 불 속에 떨어진대도 불이 태우지 못하느니, 이 보살의 위신력에 말미암는 까닭이다. 또 큰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경우라도,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얕은 곳에 곧 닿을 것이다. [法華經]

395

삼천대천국토(三千大千國土)중에 가득한 야차(夜叉). 나찰(羅刹)이 달려와 사람을 괴롭히고자 한 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 외는 것만 들으면 악한 눈으로도 바라보지 못할 것이니, 항차 해를 가할까 보냐?
[法華經]

*야차: 사람을 잡아먹는 아귀.
*나찰: 신통력으로 사람을 꼬이고, 또 잡아먹기도 한다는 악귀.

396

시방(十方)의 관세음과 온갖 보살들은 서원(誓願)을 세워 중생을 구하시는 터이매, 그 이름을 부르면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름 외우기를 시시각각 끊이지 않는다면 불꽃이 그 몸을 성하지 못하며, 무기가 부러지며, 노여움이 기쁨으로 바꾸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리라. [高王觀世音經]

397

아침에 관세음을 염하고 저녁에 관세음을 염하여, 시시각각의 행위가 이런 마음에서 일어나고, 부처님을 염하여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사람이 고난(苦難)을 떠나고 고난이 몸을 떠나 온갖 재앙이 무(無)로 돌아간다. [夢授經]

398

미래. 현재의 온갖 세계 속 육도중생(六道衆生)이 임종을 당하여, 지장보살의 이름을 얻어들어 비록 한 마디가 그 귀를 스치기만 한 대도, 이런 중생들은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을 거치지 않게 되리라.
[地藏經]

399

중생이 가지가지로 희구(希求)하는 것이 있거니 근심과 괴로움이 절실하거나 할 때, 충심으로 지장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에 염(念)하며 귀의해 공양하는 사람은, 희구하는 것을 다 얻고 온갖 근심과 괴로움을 떠나게 할 것이며, 각자에 응해서 알맞도록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하고 열반(涅槃)으로 가는 길에 안치(安置)할 것이다. [地藏十輪經]

400

만약 중생이 있어서 제근(諸根)이 성치 못해 지친 나머지 게으르며, 미치고 방일하여 본심을 잃었으며, 거기에다가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질투. 인색. 사벽(邪 ). 교만. 수면(睡眠) 따위의 악이 온통 대단하다 해도, 지장보살의 이름을 불러 마음으로 오로지해 귀의한다면, 이런 엄청난 괴로움을 다 벗어나서 열반에 안주(安住)하여 제일락(第一樂)을 얻게 된다.
[大方廣十輪經]

*사벽: 바르지 못하고 편벽함.

401

"선남자야, 만약 묘길상보살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다 불퇴전의 심경에 머무르게 되느니라."
[不思議神通境界經]

*묘길상보살: 문수보살을 이른다.

염불의 종류


402

무엇이 염불인가? 부처님께서 얻으신 것처럼 나도 얻어지이다 하여, 이같이 염(念)함이다. 이 염불에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함이요, 둘째는 부처님과 보살을 염함이요, 셋째는 부처님의 행위를 염함이요, 넷째는 부처님의 청정함을 염함이요, 다섯째는 부처님의 수승(殊勝)함을 염함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의 불퇴전(不退轉)을 염함이요, 일곱째는 부처님의 교화를 염함이요, 여덟째는 부처님이 끼치시는 이익을 염함이요, 아홉째는부처님의 깨달음을 염함이다. [十地論]


한용운의 [불교대전] 중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雲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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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스님

붓다 2016. 9. 18. 13:43

 

 

수월스님(1855∼1928)

 

중국 북간도에 있던 화엄사(華嚴寺)에서 몸을 다쳐 며칠  머물게 된 어느 독립군 연설 단원에게 들려 준 법문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을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할 것인게 잘 들어 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혔으면 누가 와서 화두 참선법(話頭參禪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가르켜 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켜 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 하고 바로 찾아 주시거든. 그러니 이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남. 요즘은 다 글렀어. 또 말세고 말이야! 모두가 이름과 위치에 얽매이다 보니, 누가 와서 화두를 물을 짝이면 아무렇게나 일러 주고 만단 말이지. 안 일러주면 자신의 이름과 자리 값이 떨어지니께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아홉 번 받았느니, 여덟 번 받았느니 하는디, 이래 가지고서야 워찌게 도통을 한다고 할 것인겨! 지가 꼭 공부하던 화두를 일러 주니께 틀림없이 공부를 이루고 바로 도를  통하는겨. 자신 만만하니께 도통하는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는 한 생각으로 마음을 몰아붙여 오로지 한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쓰잘데기 없는 몸과 마음에 끄달려, 조금 하다가 안 되면 그만 팽개치고 "소용 없다"고 하거든. 이게 다 아상(我相)이 많아서 그런겨.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한가지여. 똑같은 밥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 되는겨. 중이 되려면 처자권속을 죄다 버려야 혀. 모두 다 버리고 뛰쳐나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열심으로 닦아야 혀. 아버질 생각한다든지 어머닐 생각한다든지 가족을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거든. 무슨 공부든지  일념으로 해야 혀. 워찌케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이 일념이 안 되면 이것 저것 다 쓸데없는겨. 그래서 옛날 도통한 도인네들은 부모 형제 모두 내버리고 중이 되어 홀로  공부했던 거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겨. 집에 있으면서 부모님을 열심히 위하면 효도라도 되는데, 이런 효도도 못하고 집을 나와서는 도도 깨치지 못하니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거 아녀. 두 집안에 죄짓지 말고 "워쩌튼 죽어라 혀 보자" 해서 부모 형제 모다 버리고 이렇게 산단 말이지. "한 집안에 천자가  네 명 나는 것보다도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 게 낫다." 이런 말을  옛날부터 많이 들었지.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이 공덕으로 조상의 모든 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以苦得樂)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 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 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사람 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겨. 사람 몸 받고도 성불 못하면 이보다 더 큰 한이 워디 있을겨. 부처님께서도 "나도 너를 못  건져 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 다 쓸 데 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열심히 수행혀라. 이 공부하는 데는 다 쓸데 없다. 오직 이 마음 하나 비우면 그만인겨. 세상에서 마음 비우는 일보담 더 어려운 게 없어. 또 참는 일보담 더 어려운 일도 없어... 스님들과 동포들이 내게 이런 말을 가끔 햐. '스님은 그 고약하고 독한 나쁜 놈 밑에서 워째서 그렇게 여섯 해 동안이나 갖은 욕을 얻어먹음시러 살었냐'고. 내가 수분하에서 지낸 얘기를 워디서 들은 모양이여. 동네 사방에서 그렇게 얘기를 들었내비여. 그 때 나는 내 도를 다 이루기 위해 여섯 해 동안 어떤 젊은 스님 밑에 있었던 겨. 그 젊은 스님이 내게 무신 행패를 부리고 무신 욕지거리를 퍼부어도 나는 한순간도 성내는 마음이 일지 않았어. 나는 그런 내 보림 생활이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던겨. 그러니 그 젊은 스님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스승이었단 말여.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내 보림을 이룬 셈이여. 자네는 뒷날 꼭  중이 되고 말겨. 중이 되더라도  딴 생각 말고 아는 척 하지 말고 어리석게 열심히 공부만 혀라. 공부는 보림이 중요한 뱁이여."
그 때 수월은 수분하에서 조선 사람들이 백여 호 모여 사는 어느 마을에 있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절은 본대 박씨 성을 가진 한약방 주인이 약국 안쪽에 자신의 수행처로 지어 놓고 썼는데, 어느 날 한 젊은 스님이 찾아 와서 사정하는지라 절로 내 준 것이다. 젊은 스님은 이 집에 관음사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되 날마다 수행은 하지  않고 멋대로 살았다. 수월은 바로 이 젊은 승려에게 온갖 욕설과 행패를 당해 가며 여섯 해 동안 말없이 지냈다는 것이다. 여섯 해가 되던 해, 남만주의 봉천에 사는 아편 장수 두 사람이 찾아와서 이 젊은 스님을 꾀어 간 지 한 달 뒤에 수월도 이 곳을 떠나 나자구 송림산으로 갔다고 한다.

 

 

 

 

어느 날 수월스님께서 만공스님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숭늉 그릇을 보이며 말씀하셨다. "여보게, 만공. 이 숭늉  그릇을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 마디로 똑바로 일러 보소." 만공스님이 문득 숭늉 그릇을  들어 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는 말없이 앉아 있자 수월스님이 말씀하셨다. "잘혔어, 참 잘혔어" 수월 스님은 이  법담을 나눈 뒤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뒤 만공스님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였다.    

 

- 달을 듣는 강물, 해냄,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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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북인도의 조그만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이 붓다에게 물었다.
"수많은 수행자들과 성직자들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미심쩍고 의심스럽습니다."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경전에 씌어있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그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붓다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제자들이 슬피 울었다. "우리는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가르침에 의지하라."


어떻게 괴로움을 없앨 수 있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 중에 개와 사자의 비유가 있다. 개는 돌을 던지는 사람은 제쳐두고 날아온 돌을 물고 공격한다. 그 개에게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괴로움 자체를 없애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반면에 사자는 활이나 총은 신경쓰지 않는다. 쏘는 사람을 공격한다.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어느 날 의혹에 가득 찬 제자 한 명이 붓다에게 물었다. "세상은 영원합니까.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우주는 유한합니까. 우주는 유한하지 않습니까. 영혼은 육체와 같습니까. 영혼은 육체와 같지 않습니까."
붓다는 제자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어느 사냥꾼이 숲에서 독화살을 맞고 이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으며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이며 화살 끝에 묻은 독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것들을 따지기 전에 먼저 화살을 뽑아내야 한다.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마음은 항상 과거와 미래를 떠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몸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느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에 대해 완전한 관찰자가 될 수 있을까.


전쟁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수천 번 정복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정복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전사이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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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장구대다라니

붓다 2016. 9. 11. 16:42

 

신묘장구대다라니 21독, 송광사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바 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타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야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레 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리나야 마낙 사바하 싣다야 사바하 마하 싣다야 사바하 싣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나다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 간타 이사 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 니바 사나야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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