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안스님 인터뷰

붓다 2016. 8. 28. 00:11

 

따지고, 망상하고, 집착하는 생각부터 비워야 합니다.”

송광사 천자암 조실 활안스님은 매일 새벽 2시부터 예불과 천도재를 올린다. 매년 100일간 방문을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閉關精進)도 출가 이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천지가 지혜와 복을 주는 게 아니고 각자 타고난 생명이 자기를 밝히면 그 밝기가 태양을 뛰어 넘는다." "마음의 중심이 선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밝아 혼자만 행복한 게 아니라 중생이 다 그 혜택을 받게 된다"고 강조하는 활안스님. 엄격한 수행가풍으로 뭇 선객들의 귀감이 되는 활안스님의 가르침을 만나보자.

 

활안 스님은 평생 빈틈없는 수행으로 일관했다. 열 아홉 살에 출가해 ‘나고 죽는 그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生滅未生前 是甚麻)’를 화두로 참선 정진했다. 스님은 천자암으로 오기 전 오대산에 30년 가까이 머물렀다. 사진 왼쪽이 활안스님, 오른 쪽이 학산스님이다.

저는 1926년 3월, 전라남도 담양군 두메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쉰이 넘으셨고 어머니가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저를 낳으셨죠. 6남 1녀 중 막내아들로 제가 늦둥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조금 남달랐다고 하더군요. 여섯 살 때 누나가 제사 상에 먹던 김치를 갖다 놓은 것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상에 새 것, 좋은 것 갖다 놓으면 안 돼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조숙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제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채독증(菜毒症)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저는 전북 순창군에 있던 외가에서 살다가 외가를 나와 남의 집을 전전하며 농사 일을 봐주며 지냈지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채독증(菜毒症)으로 죽을 고비를 맞았습니다. 몸이 퉁퉁 붓는 병을 얻어 3년 동안 원인도 모른 채 투병을 했죠.

제대로 돌봐주는 이 하나 없었고 “이렇게 죽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죠. 동네 아주머니들이 “ 저 아이는 곧 땅 밥을 먹을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닷새 안에 병이 낫지 않으면 땅 밥 노릇하러 땅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다짐까지 했습니다. 매일 거리를 헤매다 집으로 돌아와 허공에 대고 이런 원망을 했어요. "허공은 들으시오. 나를 결국 죽이려고 하는가, 공로도 없이, 계산이 안 틀리오? 당신은 계산이 있어서 생명을 탄생시켰을 터인데, 그러지 말고 생각을 바꾸시오. 나를 살릴 수만 있으면, 살려만 놓으면 이 나라를 내가 도울 겁니다."

다음날 한 노인이 찾아왔더군요. 당시 육십 대 노인이었는데 곰방대를 들어 불을 붙여 물면서 제가 살아갈 방도를 일러주었어요. “야, 내가 네 눈을 보니까 무슨 병이 든 게 분명하다. 너 내 말 안 들으면 며칠 안으로 죽는다. 내 말을 듣기만 하면 구사일생으로 산다.” 저는 병이 낫기만 하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노인에게 매달렸죠. “소 잡는 곳을 찾아가서 소 피를 먹으면 낫는데 그때 채소나 과일을 먹으면 그게 더해지니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소 피를 마시면 살 수 있다는 노인의 말을 듣고 장터로 떠났죠.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한 장터였어요. 소고기 파는 집 근처로 가서 이리 저리 눈치를 봤죠. 남편이 고기를 팔다가 밥을 먹으러 가고 부인이 가게를 보는 한가한 틈을 타서 다가갔어요. 주인 아주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자 쳐다보더군요. 하소연을 했죠. “우리 고향은 아랫녘 어디인데 못살아서 고향을 나왔고,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도 채독증이라는 병을 얻어 죽을 날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 피를 먹으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아왔으니 저를 좀 살려주시오. 소 피만 먹게 해준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여주인이 제 말을 듣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고요. 조금 있으니 남편이 돌아 왔어요. 여주인이 남편에게 제 이야기를 하니까 남편은 제 얼굴을 쳐다 보더니 일단 뭐라도 좀 먹이라고 하더군요. 여주인이 뚝배기에다가 선짓국을 말아주었어요. 너무 굶었던 탓에 뭘 먹어도 쏟아냈는데 선짓국은 잘 받더군요. 등에 붙은 배가 앞으로 쑥 나올 정도로 오랜만에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었지요.

고깃집 여주인이 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러자 남편이 “뭐하러 집에까지 데리고 들어왔냐”며 호통을 쳤죠. 키워봤자 저희 부모가 와서 데리고 가버릴 거라고 화를 냈지만 그래도 저를 쫓아내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그 집에서 지내며 하루에 두 번씩 약을 먹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꿈을 꾸었는데 북쪽 하늘에 별이 보이더군요. 별에서 말이 들려왔어요. 뭐라고 하느냐면 “아무 때라도 죽게 되거든 우리가 살릴 거니까 죽는 걱정은 하지 마라.” 그 꿈을 꾼 후에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까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몸에 부기가 빠졌고 2년이 되니 혈색이 돌더군요. 그렇게 건강이 회복되었고, 그 후로 저는 제가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60년대, 오대산 북대에서 정진하며 본인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게으름’에 대해서는 단호했던 활안스님. 그 모양이 어찌나 무섭던지 호랑이띠인 스님은 자연스럽게 ‘오대산 호랑이’로 불렸다.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 때 거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앞쪽에 앉은 이가 활안스님이다.

열여섯 살 때 4년 간 일제 강점기 군수공장에서 일했어요. 스무 살 때 광복을 맞으며 외숙모의 손에 이끌려 전북 순창 순평사를 찾았죠. 그때까지도 고통 받는 육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당시 순평사에는 효봉스님의 은사인 석두 노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셨는데 그분이 정성껏 석가모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천지 지간에 모든 생명의 가장 높은 어른을 비로소 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저는 “평생 저분을 모셔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석 달 동안 석두스님의 법문을 듣고는 “바로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에 머물겠다는 발심을 하고 곧바로 행자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고된 행자생활을 마치자 노스님께서 득도수계를 허락해 비로소 온전한 출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요.

행자시절에 효봉스님과 석두스님은 저를 두고 "저 사람은 중 될 사람이고, 남보다 크게 될 거라"고 말할 정도로 행자생활에 열심이었어요. 순평사에 있다가 남원 실상사로 자리를 옮겨 공부에 매진하고 절 살림을 도맡았어요. 이후에 덕숭산 수덕사로 수행처를 옮기고 월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고, 수덕사, 법주사, 불국사를 오가며 월산스님과 금오 노스님 회상에서 정진을 거듭했습니다. 오대산 적멸보궁과 북대를 오가며 30여 년 간 수행한 시절은 지금도 수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하대요.

광양의 백운산에서는 4년 간 참선수행을 하면서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손수 마련했지요. ‘나고 죽기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참선 수행을 했죠. 토굴에 가려면 마을에서 세 시간이나 걸어가야 할 만큼 깊은 산중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니 따로 시간을 내어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그것이 바로 수행이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할 때가 있죠. 어느 날, 그날도 해가 넘어간 줄도 모르고 논에서 일을 하다가 낫으로 손을 베고 말았죠.

사방이 어두우니 얼마나 깊이 베인지도 몰랐습니다. 하던 일을 끝까지 마쳤죠. 방에 와서 촛불을 켜 보니 방바닥에 피가 떨어지더군요. ‘누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피는 덜 흘렸을 건데, 가난에도 암가난 숫가난이 있다던데, 살수록 어찌 이리 외롭다냐!’ 그렇게 홀로 외쳤습니다. 손을 동여매고 부엌에 가서 찬밥으로 허기를 채우는데, 피를 흘리면서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더군요. 쓸쓸한 마음이 밀려오고 또 쏟아진 피를 보니 웃음이 나고요. ‘내가 이래야만 성불을 하는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밤 밥 한 술 떠먹고 죽비 세 번 치고 참선에 들었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지금 사는 것도 꿈속이지만, 비몽사몽간에 9척이나 되는 여래가 나타나 자신의 오른팔로 베개를 삼아 누이고는 말씀하셨죠. “너만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들도 다 그렇게 외로웠단다.” 이 말씀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죠. 저는 여래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게 남아 일어나자마자 유리 안에 모셔진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이렇게 기도했어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가진 물심(物心)을 탁 털어서 나에게 다 주시오. 내 배가 부르면 다 주지, 안 줄 것이 없지요. 내 말 안 들으면 뭣 하러 거기 앉았어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밥 한 술 뜰 때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이시여! 당신이 부처님이라면 말없이 들으시오. 내가 과거 세상에는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 상황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끝없이 의지해 왔지만 이제 끝없이 많은 상대를 모두 빛이 나게 하고 상대방이 다 보람을 느끼도록 하고 나를 의지하는 곳에 기쁨만 주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몸이 고된 것도 큰 공부입니다. 특히 수행자는 터럭만큼이라도 게으름에 빠져서는 안되지요. 수행을 할 때는 추상같이 해야 하지만, 항상 수행자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깨달으면 부처요, 미혹하면 중생인데 출가한 지 오래되고 나이가 많다고 공부를 게을리하고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한다면 중생과 같으므로 지옥에나 가야지요. 깨달음이란 생사와 같아서 전후고저(前後高低)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해도 후회만 남게 되는 것이 절집안 공부"라고 말하는 활안스님. 1968년 43세 해인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 첫 번째가 활안스님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진전이 없는 것은 일념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앉아서 온갖 쓸데없는 중상, 망상만 찾아들어 결국 허송세월만 보냅니다. 금생에 반드시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원력으로 “이 뭣고(是甚)”를 참구하면 시간이 흘러도, 옆에서 시끄러워도,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잘 먹고 못 먹고 하는 소소한 일은 다 놓아 버리고 모든 생각을 오로지 화두에 쏟아야 하지요. 그러면 다른 생각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고, 붙을래야 붙을 것이 없습니다.

바늘로 살을 찌르면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듯이 모든 망상이 다 끊어져 화두가 아주 강도 높게 집중되고 다른 사람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할 정도로 화두에 푹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흐르다가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화두가 타파되지요. 만사를 잊은 가운데 화두일념이 흐르는 물과 같이, 떠도는 구름과 같이 지속되다가 기연이 맞닿으면 화두당처(話頭當處)가 드러납니다. 만물이 생장하듯 화두 공부도 진실하게만 지어가면 자연이치와 똑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공부가 무르익어 모든 잡념은 물러가고 하루 한 생각만 또렷이 드러나게 되지요.

활안스님은 우리에게 ‘왜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의 거침없는 할(喝)과 방(棒), 몸소 실천하는 운력(運力), 엄격한 수행가풍은 뭇 선객들의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설악산 봉정암 탑에서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이 활안스님이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에서 유, 무의 생명이 탄생되어 살아가는 길은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동식물이나, 생명에 해당되는 것은 모두 같기 때문이죠. 끝없이 밝고, 끝없이 어둡고, 끝없이 자유롭고, 끝없이 부자유하며, 걸어가는 것까지 모두가 똑같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시작했는데 생명을 놓아 두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空)입니다. 하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생겨도 무생(無生)입니다. 무생지(無生地)에서 탄생하면 그 생 자체에 하자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큰 것은 닦는 것이 아니고 쌓는 것이 아니요, 바로 보았을 때입니다.

그릇이 확실하다면 다 수용하고 심신이 공(空)해야 합니다. 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 그릇에 차이가 있다면 지구가 천 번 만 번 생겨 없어질 때까지 노력을 해야 바로 보고 쓸 줄 아는 이치에 도달하게 되지요. 장사를 하든지 싸움을 하든지 도를 닦든지 염불을 하든지 정치를 하든지 문학을 하든지 자기가 노력하는 과정은 제불 성현과 같습니다. 잘살려면 밝아야 하고, 밝으려면 천지의 지혜가 확실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중생도 공부는 상근기(上根機, 부처님 말씀을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첫 순간에 바로 깨달음을 얻는 바탕을 가진 사람. 중국의 육조 혜능(慧能) 같은 경우이다. 문화원형용어사전), 소승, 대승이 필요 없고 일등이 필요 없습니다. 공부가 안되는 것은 마음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중생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보고, 오직 굳은 마음만 정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해지면 뜨거워서 견딜 수 없도록 노력을 해야 타 버리고, 차가워서 견딜 수 없도록 노력해야 얼어 버립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잊을 정도로 공부를 해야 성취가 이루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행복이지요. 행복하려면 밝아야 합니다.

마음도 밝아야 하고 보고 듣는 것도 밝아야 합니다. 밝으면 시비할 것이 없습니다. 어두운 탓으로 시비가 생기는 것입니다. 밝기 위해서는 견성대각(見性大覺)이 있어야 하는데 견성대각(見性大覺)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생산 지혜입니다. 자신이 못나고 어리석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근본자리인 마음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정해지면 노력하게 되고, 노력이 뒤따르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견성도 본인 마음이 정한 대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노력은 지혜를 얻게 되고 자연법의 이치를 터득하게 합니다. 선(禪)의 요체는 대우주와 자연 생명의 이치를 바로 보고자 함입니다. 선(禪)은 지고 우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이를 위한 노력이 선(禪)의 시작입니다. 선가(禪家)에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前)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禪)은 언어나 문자,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느끼고 맛보는 것밖에 달리 선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덕을 쌓고 질서에 따라 열심히 생활하면 그것이 우주와 성현에 공양 올리는 일이고 국운을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심신이 하나로 합쳐져 성성(惺惺)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면 늘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이 우주생명의 근원이 되고 우주생명이 곧 한 생명입니다. 모든 생명마다 길이 활짝 열려 있고 생산법이 확실합니다. 모든 생명이 세포 하나하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한 생명의 뜻을 직시하여 궁극에는 마음 근본자리가 얼마나 밝은가 알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잘살려면 사는 법을 알아야 하고 사는 법을 알려면 마음이 밝아야 합니다. 밝으려면 보아야 합니다. 아주 큰 것은 닦는 것도 쌓는 것도 아니고 바로 보는 것입니다.

지구는 공전 자전과 풍마(風磨)로 깎아지고 먼지로 분해돼 공으로 돌아갑니다.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다함이 없는 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성청정을 견성하는 원리이지요. 견성은 부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생명의 다함이 없는 기본 원천입니다. 지혜는 상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형상도 공도 아닌 길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복은 하늘이 주고, 진리가 주고, 자연이 주고, 천지가 주고, 상대가 준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고 씨앗입니다. 풀 한 포기 모기 한 마리까지라도 그 생명이 생성된 뜻을 안다면 우주 시방 법계의 모든 생명의 핵심이 되고 전체의 생명은 한 생명의 주인이 되는 이치도 알게 됩니다.

1974년 구산 스님의 권유로 천자암을 찾은 활안스님. 당시 천자암은 보조 스님이 주석했던 암자였지만 그나마 남았던 전각 한 채도 허물어져 가고 있었을 정도로 초라했다. 활안스님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양식은 물론 나무와 기왓장을 나르며 법당을 올렸고, 법왕루, 나한전, 종각도 들였다. 지금의 사격(寺格)은 온전히 활안스님의 원력으로 일군 것이다. 천자암에서 찍은 사진으로 왼쪽 첫번째가 활안스님이다.

삶을 살아가는 생활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일종의 숫자놀음과 같아서 크나 작으나 간에 내 삶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숫자가 파악이 되면 먼저 납득을 하는 겁니다. 내 삶의 숫자가 100인지 200인지 그렇게 되면 그 숫자를 분해할 수도 있고 능히 조립할 수도 있게 됩니다. 조립이 잘 되면 모든 중생 한 사람 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크거나 작은 대로 그 존재의 삶은 끊임없이 빛이 납니다.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생을 보는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마치 아가에게 젖을 잘 먹이고 나서 재롱 부리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처럼 자식 잘되는 것이 제일인 어머니의 마음처럼 행복합니다. 그것이 자비의 마음입니다.

삶의 숫자 놀음을 파악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본래의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 마음 자리를 깨닫고 나면 우주만물이 생기고 죽는 법이 이루어지기 전의 본래의 내 모습이 바로 보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다른 종교에서처럼 어떤 절대자가 나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내 대신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바로 나만이 나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아이고,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지혜가 없어서’ 하면서 수행을 미루고 둘러대고 변명을 합니다. 이건 다 거짓말입니다. 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하기 싫어서입니다. 변명도 시방삼세 부처님이 꼼짝할 수 없는 큰 변명을 하면 성불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게으름과 고통만 남습니다. 왜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안 해야 할 일은 해 놓고서,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흉보고 그럽니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괴롭고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입니다. 내가 한 생각, 설계를 잘 하고 못 하고 하는 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삶은 내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이 몸뚱이는 마음의 옷입니다. 몰랐을 때에는 몸뚱이의 생사가 둘이지만, 알고 나면 생사가 본래 공한 것입니다. 마음의 옷이 더러우면 빨아 입고, 떨어지면 기워 입고, 못 쓰게 되면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 입어야겠다고 마음 먹어야 합니다. 무슨 마음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끝없이 빛이 날지, 판단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80세가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도량석을 하고 종송을 하고 우렁차게 목탁을 치며 끊임없이 염불 정진한다. 새벽도량석 중인 활안스님 모습.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많이 흐르고, 비가 안 오면 굳게 마련이니, 모두가 살아가는 현상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불교가 발전하지 못합니다. 인재가 없어요. 국가와 우리 사회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종단에 없단 말입니다. 개개인 불평만 있지 공심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원망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 심성이 단박에 밝아야겠다고 다지고 또 다져야 합니다. 모든 노력과 공로가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상식이 남아도니 귀신이고, 뒤처리를 못하니 등신입니다. 자기 권한 하나도 없이 부화뇌동하여 물질을 쫓으니, 더 분석해 들어가면 사기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이 마비되어 있는 것이지요. 불교가 사회적으로 살 수 있는 방안을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마음 자리가 정해지지 않으면 내 것도 다 남의 것입니다.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지요.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되어 행복하기 위해서는 밝아야 함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어두우면 죽도록 일해 놓고 끝에 가서는 한바탕 얻어맞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내 팔자야’하고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이 어두운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음이 밝아 놓으면 그 밝은 내용으로 설계를 하고 또 노력을 하고 뒤처리를 다 해도 밝은 지혜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잘 해내고, 이듬해 논밭에 농작물 심는 일만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요. 바닷물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항상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은 밑바닥은 언제나 이 못보다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세속에 살면서 우리들의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함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거칠고 힘든 일을 당해 울고 웃을지라도 속마음은 돌보다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해야 합니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바닷속 고요가 출렁이는 파도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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