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스님(1855∼1928)
중국 북간도에 있던 화엄사(華嚴寺)에서 몸을 다쳐 며칠 머물게 된 어느 독립군 연설 단원에게 들려 준 법문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을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할 것인게 잘 들어 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혔으면 누가 와서 화두 참선법(話頭參禪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가르켜 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켜 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 하고 바로 찾아 주시거든. 그러니 이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남. 요즘은 다 글렀어. 또 말세고 말이야! 모두가 이름과 위치에 얽매이다 보니, 누가 와서 화두를 물을 짝이면 아무렇게나 일러 주고 만단 말이지. 안 일러주면 자신의 이름과 자리 값이 떨어지니께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아홉 번 받았느니, 여덟 번 받았느니 하는디, 이래 가지고서야 워찌게 도통을 한다고 할 것인겨! 지가 꼭 공부하던 화두를 일러 주니께 틀림없이 공부를 이루고 바로 도를 통하는겨. 자신 만만하니께 도통하는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는 한 생각으로 마음을 몰아붙여 오로지 한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쓰잘데기 없는 몸과 마음에 끄달려, 조금 하다가 안 되면 그만 팽개치고 "소용 없다"고 하거든. 이게 다 아상(我相)이 많아서 그런겨.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한가지여. 똑같은 밥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 되는겨. 중이 되려면 처자권속을 죄다 버려야 혀. 모두 다 버리고 뛰쳐나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열심으로 닦아야 혀. 아버질 생각한다든지 어머닐 생각한다든지 가족을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거든. 무슨 공부든지 일념으로 해야 혀. 워찌케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이 일념이 안 되면 이것 저것 다 쓸데없는겨. 그래서 옛날 도통한 도인네들은 부모 형제 모두 내버리고 중이 되어 홀로 공부했던 거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겨. 집에 있으면서 부모님을 열심히 위하면 효도라도 되는데, 이런 효도도 못하고 집을 나와서는 도도 깨치지 못하니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거 아녀. 두 집안에 죄짓지 말고 "워쩌튼 죽어라 혀 보자" 해서 부모 형제 모다 버리고 이렇게 산단 말이지. "한 집안에 천자가 네 명 나는 것보다도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 게 낫다." 이런 말을 옛날부터 많이 들었지.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이 공덕으로 조상의 모든 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以苦得樂)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 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 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사람 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겨. 사람 몸 받고도 성불 못하면 이보다 더 큰 한이 워디 있을겨. 부처님께서도 "나도 너를 못 건져 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 다 쓸 데 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열심히 수행혀라. 이 공부하는 데는 다 쓸데 없다. 오직 이 마음 하나 비우면 그만인겨. 세상에서 마음 비우는 일보담 더 어려운 게 없어. 또 참는 일보담 더 어려운 일도 없어... 스님들과 동포들이 내게 이런 말을 가끔 햐. '스님은 그 고약하고 독한 나쁜 놈 밑에서 워째서 그렇게 여섯 해 동안이나 갖은 욕을 얻어먹음시러 살었냐'고. 내가 수분하에서 지낸 얘기를 워디서 들은 모양이여. 동네 사방에서 그렇게 얘기를 들었내비여. 그 때 나는 내 도를 다 이루기 위해 여섯 해 동안 어떤 젊은 스님 밑에 있었던 겨. 그 젊은 스님이 내게 무신 행패를 부리고 무신 욕지거리를 퍼부어도 나는 한순간도 성내는 마음이 일지 않았어. 나는 그런 내 보림 생활이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던겨. 그러니 그 젊은 스님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스승이었단 말여.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내 보림을 이룬 셈이여. 자네는 뒷날 꼭 중이 되고 말겨. 중이 되더라도 딴 생각 말고 아는 척 하지 말고 어리석게 열심히 공부만 혀라. 공부는 보림이 중요한 뱁이여."
그 때 수월은 수분하에서 조선 사람들이 백여 호 모여 사는 어느 마을에 있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절은 본대 박씨 성을 가진 한약방 주인이 약국 안쪽에 자신의 수행처로 지어 놓고 썼는데, 어느 날 한 젊은 스님이 찾아 와서 사정하는지라 절로 내 준 것이다. 젊은 스님은 이 집에 관음사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되 날마다 수행은 하지 않고 멋대로 살았다. 수월은 바로 이 젊은 승려에게 온갖 욕설과 행패를 당해 가며 여섯 해 동안 말없이 지냈다는 것이다. 여섯 해가 되던 해, 남만주의 봉천에 사는 아편 장수 두 사람이 찾아와서 이 젊은 스님을 꾀어 간 지 한 달 뒤에 수월도 이 곳을 떠나 나자구 송림산으로 갔다고 한다.
어느 날 수월스님께서 만공스님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숭늉 그릇을 보이며 말씀하셨다. "여보게, 만공. 이 숭늉 그릇을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 마디로 똑바로 일러 보소." 만공스님이 문득 숭늉 그릇을 들어 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는 말없이 앉아 있자 수월스님이 말씀하셨다. "잘혔어, 참 잘혔어" 수월 스님은 이 법담을 나눈 뒤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뒤 만공스님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였다.
- 달을 듣는 강물, 해냄,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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