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염불로 정토에서 다시 만납시다.


청담스님이 옛 아내에게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 동안 염불공부 잘하셔서 죽을 때에 귀신한테 끌려서 삼악도로 가지 아니하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님 회상으로 가실 자신이 섰습니까?
모진 병 앓고 똥이나 싸버리고 정신없이 잡귀신들에게 끌려가서 무주고혼이 되어서 밤낮으로 울고 천만겁으로 돌아다니면서 물 한 그릇도 못 얻어먹는 불쌍한 도가비 귀신이나 면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다 늙어서 서산에 걸린 해와 같이 금방 쏙 넘어가게 될 형편이 아닙니까? 살림걱정, 아이들 걱정 이 걱정 저 걱정 다 해봐야 보살에게는 쓸데없는 헛걱정이오, 죄업만 두터워질 뿐이니 다 제쳐놓고 염불공부나 부지런히 하시오. 앞날이 급했지 않습니까?
내나 보살이나 얼마 안 있어 우리들이 다 죽어서 업을 따라서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 아닙니까?
부디 쓸데없는 망상은 다 버리시고 염불만 부지런히 하셔야 하지요. 곧 떠나게 된 인간들이 제 늙은 줄도 모르고 망상만 피우고 업만 지으면 만겁의 고생을 어찌 다 감당할 것이오?
극락세계만 가놓으면 우리가 만날 사람은 다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다 집어치우고 자나 깨나 나무아미타불, 급했습니다. 부탁입니다. 절하고 빕니다.
늙은 중 합장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내며 청정 승단의 재건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던 청담 순호(靑潭淳浩, 1902~1971). 1954년 식민지 불교의 청산을 기치로 본격화된 정화운동 중심에는 그가 있었고,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꾼 것도 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청담의 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잇따른 승려대회를 비롯해 데모와 할복사건, 유혈충돌, 법정투쟁 등 숱한 희생과 우여곡절. 그 속에서 종단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청담은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옛 아내를 떠올리고는 했다. 남편과 막내딸을 불문(佛門)으로 떠나보내고 온갖 번민과 근심을 끓이고 산다는 그녀의 소식을 접할 때면 팔만사천 번뇌를 여의었다는 청담조차 모래 위에 부어진 물처럼 아픔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자물쇠도 열쇠도 없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괴로워할 그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 진주 호국사에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그에게 ‘목마름이야 물로 다스릴 수 있지만 마음이 탈 때에는 무엇으로 끌 수 있느냐’는 한 노스님의 말을 듣고 시작된 출가에의 의지. 대를 이어야할 2대 독자가 삭발출가하려 하자 아버지는 서둘러 그를 혼인시켰고, 청담과 차점이(1905~1988)와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됐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넉넉지 못한 농가로 시집와 소처럼 일하고 양처럼 순종했던 여인. 자신이 백양사로 해인사로 구름처럼 떠돌 때에도 그저 지켜만 보고, 일본에서 출가자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착한 여인. 고성 옥천사로 출가한 청담이 고향을 찾아가 이혼수속 얘기를 꺼냈을 때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아내의 야윈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기왕지사 출가했으믄 스님다운 스님이 되셔야지예. 지야 뭐, 당신이 하자는대로 해드리겠심니더.”

1930년 봄, 고향 낙성법회에 법문 왔다가 죽자 사자 매달리는 어머니에 이끌려 다시 찾은 고향집. 마지막 소원이라며 “가문 이을 씨앗 하나만 심어 놓고 가라”는 어머니의 한 맺힌 절규에 청담은 목건련을 떠올리며 ‘불쌍한 어머니, 저 분을 위해서라면 지옥엔들 가지 못하랴.’라고 마음을 굳혔다. 동시에 아들을 낳지 못해 주변의 핍박과 자괴감에 두고두고 시달릴 젊은 아내에게 옛 지아비로서 마지막 의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룻밤의 파계. 첫 닭이 울기도 전 버선도 신지 않은 채 속가를 뛰쳐나온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아! 수행자인 내가…. 수미산 같은 이 죄업을 어찌 다 씻을고.’ 가혹하리만치 매서운 청담의 참회와 인욕수행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홑옷에 맨발 차림. 청담의 눈물겹도록 처절한 만행은 덕숭산, 오대산, 설악산, 묘향산을 거쳐 북간도로까지 이어졌다. 여윈 볼을 할퀴고 지나가는 칼바람에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을 때도 늘 맨발이었다. 살은 얼어 찢겨나가고 발은 쩍쩍 갈라져 피가 솟았다.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이 있으면 청담 스님이 다녀간 자리’라는 말이 수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늙은 홀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출가의 길은 선택한 청담은 가족들의 고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그쳐 피나는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청담이 서른 넷 이른 나이에 묘향산 설령대에서 오도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모든 부처와 조사는 어리석기 그지없어
어찌 현학의 이치를 깨우쳤으랴.
만약 누가 나에게 한 소식 한 바를 묻는다면
길가에 서 있는 고탑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하리라.

오랫동안 괴롭혀오던 마음의 갈증이 해갈된 청담. 하지만 이 무렵 그에게 들려온 속가의 얘기는 그를 안타깝게 했다. 옛 아내가 또 딸아이를 낳았으며, 이로 인해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하고 있다는 것. 청담은 어머니가 더 이상 죄업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늙은 홀어머니를 직지사 서전암으로 모셔와 출가토록 했다. ‘아들 스님’의 당부대로 비구니 성인(性仁)은 묵은 한을 내려놓고 열심히 염불정진 했다. 훗날 어머니가 임종을 얼마 앞두고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며느리도 사찰에 머물며 임종 때까지 시어머니를 돌봤다는 얘기를 들은 청담은 슬픔에 앞서 두 여인의 화해에 안도의 한 숨부터 먼저 내쉬었다.

청담과 차점이가 다시 만난 건 몇 해 뒤인 1943년 여름. 복천암에서 생식을 하며 안거수행을 하던 청담은 사월초파일날 상주경찰서로 연행됐다. 잦아들지 않는 독립운동에 골머리를 앓던 일제는 기미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청담이 북간도에 간 이유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법(法)을 찾아 수월을 만나러 갔다는 그의 항변에도 연일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인욕제일 청담이건만 두 달여 계속된 잔학한 고문에 결국 실신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사경을 헤매야 했다. 이 때 멀리 진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달려온 이가 차점이였다.
“시님, 시님…. 이게 뭔 일이란 말입니꺼.”

낡고 찢긴 옷에 피골이 상접한 청담의 모습에 차점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마지막 남아있던 땅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청담을 경찰서에서 빼내 상주포교당으로 옮겼다. 차점이는 청담의 곁에 머물며 24시간 지극정성으로 병구완을 했다.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청담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고 조금씩 거동도 가능해졌다. 청담은 희끗희끗 흰머리가 돋기 시작한 옛 아내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성껏 들려주었다. 차점이는 무뚝뚝하기만 하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지아비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냥 이렇게 세월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남편이 아니라 바람과 구름이 되어 떠도는 수행자였다.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자 청담은 또다시 운수행각에 나섰고, 차점이는 그런 청담에게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바랑을 조심스레 건넸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염불도 지극정성으로 하도록 해요.”
“예, 시님…. 알겠심니더.”

다시 몇 해가 흘러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이른 1945년 초, 청담은 차점이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젊은 남자는 징용으로, 처녀는 정신대로 끌고 가고 있으니 둘째 딸을 데려다가 스님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파계를 해가며 까지 나은 아이, 청담은 어쩌면 이 또한 숙세부터 이어져온 불연(佛緣)이라는 생각에 절친한 도반 성철의 도움을 얻어 머리를 깎도록 했다.

그러나 차점이는 막상 자신의 뜻대로 딸이 출가했건만 어린 딸이 절 생활은 잘 하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한시도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딸 묘엄이 조선 최고의 강백이라는 운허의 문하에서 공부할 때도, 뒤늦게 동국대에 입학했을 때도, 청도 운문사로 내려가 강원을 개설해 학인들을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차점이는 수시로 딸이 있는 곳을 찾았고 청담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늘 안타깝기만 했다. 청담은 절을 찾아 온 차점이에게 대도성(大道性)이라는 법명을 주고 걱정과 욕심을 내려놓을 것을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조계종 종정직을 사퇴한 이듬해인 1968년, 청담은 옛 아내에게 간절한 편지를 띄웠다. 이제는 이런 저런 근심걱정 다 접어놓고 자신의 업장이나 닦으라고, 그래서 훗날 정토에서 다시 만나자고….

1971년 11월 15일 청담이 홀연히 열반에 들자 대도성은 자신의 삶을 지탱했던 대들보가 무너지는 듯했다. 십수 년 간 조석으로 기도하고 염불도 했건만 가슴 한 켠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몇 해 뒤 보다 못한 묘엄은 대도성을 절로 모셔와 손수 머리를 깎아 출가토록 한 뒤 대도(大道)라는 법명과 함께 스님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대도는 절에서 생활하며 옛 남편의 뜻을 따라 염불과 경전독송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세상사가 꿈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다’던 청담의 말을 비로소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1988년 5월 12일 마침내 대도는 고단한 삶의 여정을 접고 무정했던 남편, 인자했던 삶의 스승 청담이 있는 아미타불 회상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mitra@beopbo.com


※청담 스님이 대도성 보살님께 보낸 편지는 현재 서울 도선사 청담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그러나 편지에 날짜가 기록돼 있지 않아 청담 스님이 정확히 언제 보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당시 대도성 보살님과 같이 생활했던 손자인 부산대 철학과 김용환 교수는 1968년에 할머니가 청담 스님으로부터 그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으며, 편지의 내용으로 미뤄보더라도 그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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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의 가피


372

"그리고 선남자야, 교살라국에 5백이나 되는 도둑떼가 있어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재물을 겁탈해 피해가 매우 심했으므로, 그 포학함을 걱정한 비사닉왕이 군을 동원해 이를 체포하고, 그 눈을 도린 후에 숲 속에 버렸다. 그런데 이 도둑들은 이미 과거의 부처님 밑에서 여러 선근(善根)을 심은 사람들이었으므로, 실명(失明)하여 큰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무불타(南無佛陀) 나무불타! 지금 우리를 구해 주는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때 나는 기원정사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서늘한 바람이 향산(香山) 속의 갖가지 약초의 향기를 불어와 그 눈자위 안에 가득 차게 해주었고, 그로 인해 도독들은 눈이 다시 생겨 전과 다름없게 되었다. 도둑들은 눈을 떠 여래가 그 앞에 서서 설법하는 것을 보자, 가르침을 들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켰다."
[涅槃經]

*나무불타: 진심으로 삼보에 귀순하여 이를 믿는 일.

373

"선남자야, 조달(調達)이 탐심을 내어 족한 줄을 모르고, 우락(牛酪)을 너무 많이 먹은 적이있었다. 그래 머리가 아파 큰 고통을 당해서 어쩔 바를 모르다가, 문득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외쳐 댔다. 우선니성에 있던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자비심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 때 조달은 내가 그곳에 나타나, 손으로 머리와 배를 문지르면서 소금 넣은 뜨거운 물을 주어 먹게 했기 때문에 곧 병이 나았으나, 내가 정말 그곳에 가서 그의 머리와 배를 만지고 더운물을 먹였던 것은 아니다. 선남자야, 마땅히 알라. 다 이는 자선근(慈善根)의 힘이 그자로 하여금 이런 일을 보게 한 것임을! [涅槃經]

*우락: 응고한 우유. 요구르트 비슷하나 신맛이 난다.
*자선근: 온갖 선을 낳는 근본인. 자비심.

374

제천(諸天). 제왕. 인민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잡고, 억념수지(憶念受持)하며 귀의공양(歸依供養)하여 그 불토(佛土)에 태어나기를 구하면, 그 사람이 죽어 반드시 왕생(往生)하게 된다.만약 어느 중생이 있어서 그 이름을 듣잡고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기뻐하여, 비록 잠깐 사이라도 그 지성으로 회향(廻向)해서 그 불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왕생하게 된다.
[大阿彌陀經]

375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에게 이르셨다.
"어떤 중생이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지어 온갖 악을 갖추었다 하면, 이런 어리석은 자는악업으로 말미암아 응당 악도에 떨어져 다겁에 걸쳐 무궁한 괴로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이 사람의 임종 때, 선지식이 가지가지로 위안하며 그를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 염불하기를 권했으나, 그 사람은 너무나 고통이 심해 염불할 경황이 없었으므로, 선지식은 '염불할 수 없거든 귀의무량수경(歸依無量壽經)이라 부르라'고 일렀다 하자. 이리하여 그 사람이 진심으로 소리를 끊이지 않고 십념(十念)을 갖추어 나무아미타불이라 부른다면, 부처님 이름을 부른 탓으로 염념(念念)중에 팔십억 겁의 생사죄(生死罪)를 제거하는 결과가 되어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할 것이다. [觀無量壽經]

*무량수불: 아미타불을 이르는 말. 수명을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뜻.
*십념: 여기서는 열 번 부처님을 염하는 일.

[풀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칭명(稱名)과 염불(念佛)을 구별하고 있는 일이다. 염불이란 부처님을 염(念)하는 일, 마음에 생각하여 잊지 않는 일이며, 칭명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다. 그러나 후세에 오자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칭명을 염불이라 일컫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경문(經文)에서 보아 칭명은 염불보다 격이 낮은 것이 사실이나, 그런 선업(善業)만으로도 구제될 수 있다고 한 곳에, 후세의 정토종(淨土宗)의 신앙이 생겨날 소지(素地)가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자기의 노력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불교 본래의 입장이거니와, 대승 불교에 와서 정토삼부경이 나타나자 아미타불의 절대적인 대비(大悲)에 매어달려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신앙이 일어났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것으로 끝나는 다른 종교와 달리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이 사바세계는 수도를 방해하는 조건이 너무 많으므로 정토에 태어남으로써 더 용이하게 수도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을 택하겠다
는 소망이어서,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는 여전히 윤회하는 중생임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하간 이런 신앙 태도는 본래의 그것에 비해 쉬운 길이라 해서 이행문(易行門), 부처님의 힘에 전적으로 매어달린다 해서 타력종(他力宗)이라 불러 왔다.

376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이르셨다.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있어서 항상 지심(至心)으로 부처님을 한결같이 염(念)한다면, 산림(山林)에 있거나 마을에 있거나, 낮이건 밤이건 앉았건 누웠건, 부처님들께서는 이 사람을 늘 눈앞에 있는 듯 보고 계시리라." [涅槃經]

377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부처님을 염(念)하는 자는 사람 속의 분타리화(芬陀利華)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 훌륭한 벗이 되어, 도량(道場)에 앉아 부처님들의 집에 태어나게 해주느니라." [觀無量壽經]

*분타리화: 백련화

378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내가 열반에 든 후에 제천(諸天)과 세상 사람들이 내 이름과 나무제불(南無諸佛)을 부른다면, 그 받는 바 복덕이 무량할 것이다. 항차 다시 계념(繫念)하여 부처님들을 염(念)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여러 장애를 없애지 못하랴."
[觀佛三昧經]

379

항상 염불하는 사람에게는, 여러 사견(邪見)이 파고들 편의가 없느니라.
[無量門微密持經]

380

내가 중생들을 관찰컨대, 부처님을 염(念)치 않는 탓으로 악취(惡趣)에 떨어져 생사의 윤회를 받고 있다. 만약 이를 깨달아 길이 부처님을 염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환과(不還果)를 꼭
얻어 미혹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으리라. [本事經]

*불환과: 뒷걸음치는 일이 없는 자리. 소승불교에서 아라한 자리에 이르는 차례를 나타내는사과 중의 세 번째의 과(果). 욕계의 온갖 번뇌를 끊어 버렸기에 욕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천상에 태어나는 자리.

381

만약 지심(至心)으로 계념(繫念)하고 단좌정수(端坐正受)하여 부처님의 육신을 관상(觀想)한다면, 이 사람의 마음은 불심(佛心)과 같아져 부처님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번뇌 속에 있을지라도 여러 악의 가리우는 바가 되지 아니하며, 내세 어느 땐가는 큰 가르침의 비를 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觀佛經]

382

만약 부처님의 이름을 마음에 지녀 겁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지혜가 있어서 첨곡(諂曲)함이 없다면, 늘 부처님들 앞에 있게 되리라. [十二佛名經]

383

만약 사람이 있어서 날마다 여래의 이름과 공덕을 일컬어 말한다면, 이런 중생들은 능히 어둠을 떠나 점차로 온갖 번뇌를 불살라 버릴 수 있으리라. [寶積經]

384

부처님을 삼가 잊지 않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생사에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한 번이라도 '나모불타대자비'를 부른다면, 이런 사람들은 생사의 세계를 마칠 때까지 선근(善根)이 다하는 일 없이, 천(天). 인(人)중에서 부(富)와 행복을 항상누리고 마지막에는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될 것이다. [般若經]

*반열반: 뛰어나고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 또 석존의 위대한 죽음. 여기서는 전자의 뜻.

385

정반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염불의 공덕은 그 모양이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부왕(父王)에게 말씀하셨다.
"40유순(由旬) 평방이나 되는 이란(伊蘭) 숲 속에 한 그루의 우두전단(牛頭 檀)이 있다 할 때, 그 싹이 흙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으면 이란의 숲은 악취로 가득하여 향기라곤 없을 것이고, 그 꽃이나 열매를 먹는 자는 발광한 끝에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전단 싹이 점점 자라나 의젓한 나무를 이루면, 향기가 대단해서 마침내 이 숲을 일변시켜 온통 향기롭게 함으로써, 보는 사람은 누구나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온갖 중생 이 윤회속에 있으면서 염불하는 마음도 이와 같으오니, 오로지 계념(繫念)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필시 부처님 앞에 태어나고, 한 번 왕생(往生)하고 나면 모든 악을 고쳐 대자비를 이룸이, 저 향목(香木)이 이란 숲을 고치는 것 같사오리다." [觀佛三昧經]

*이란: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 씨는 약간의 독소를 지니고 있고, 기름을 짠다. 악취가 심한독초라 하여 전단에 대립시켜 향기를 내는 향목.

386

미란왕이 나한(羅漢) 나선비구(那先比丘)에게 물었다.
"세상에 있으면서 백 년이나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임종 때 염불하면, 죽은 후 천상(天上)에 태어난다 하셨습니다만, 나는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또 한 번만 살생(殺生)을 해도 죽어서 니리(泥犁)에 떨어진다 하셨습니다만, 나는 이것도 믿지 않습니다."
나선비구가 왕에게 물었다.
"사람이 조약돌을 들어 물위에 놓으면 뜨겠습니까, 가라앉겠습니까?
"물론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백 개의 암석을 가져다가 배 위에 놓은 경우, 그 배가 가라앉겠습니까, 어떻겠습까?"
"가라앉지 않습니다."
"배에 실린 백 개의 암석이 배로 말미암아 아니 가라앉는 것같이 사람이 대악(大惡)을 지었
대도 잠깐 염불하면, 그 공덕에 의해 니리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날 것이니, 어찌 믿을 일이 못 되겠습니까? 또 작은 돌도 가라앉는다 함은, 사람이 악을 범하고 불경(佛經)의 가르침을 모르면 죽어서 니리에 떨어지는 비유니, 이 또한 어찌 믿을 것이 못 된다 하시겠
습니까?"
왕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那先比丘經]

*니리: 지옥을 이른다.

387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무수한 문이 있다. 마치 세상의 길에 험난한 길, 쉬운 길이 있어서 육로(陸路)를 걷기는 어렵고 수로를 배로 가면 쉬운 것같이, 보살의 길에도 근행정진(勤行精進)이 있는가 하면, 신방편(信方便)의 이행도(易行道)를 통해 불퇴위(不退位)에 속히 이르는방법도 있다. 만약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속히 이르고 싶거든,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불러 받들어야 한다. [十住毘婆娑論]

*신방편: 신심의 방편
*이행도: 타력으로 쉬운 길.

388

"십불(十佛)의 이름을 듣고 마음에 새겨 지니면 무상(無上)의 보리에서 퇴전(退轉)치 않는 것과 같이, 불퇴전을 얻게 하는 다른 부처님의 이름이 있는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오로지하여 염(念)한다면, 역시 불퇴전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자세히 설명하자면, 무량수불. 세자재왕불. 사자의불. 보덕불. 상덕불. 전단향불. 무외명불. 향정불. 보현불. 보상불(寶相佛)등 백여 세존께서는, 시방(十方)의 청정 세계에서 모두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 억념(憶念)하고 계시다. 그 부처님의 본원(本願)에 '만약 사람이 나를 염(念)하여 스스로 귀의해 오면, 반드시 정(定)에 들어 무상(無上)의 보리를 얻게 하리라' 하신 까닭에, 다 아미타불을 억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어서 이 부처님의 무량한 힘의 공덕을 염한다면, 곧 정(定)에 반드시 들어가게 들것이다."
[十住毘婆娑論]

[풀이]

여기에 인용된 본원은, 문장은 약간 다르지만 11의 필지멸도원을 가리킨다. 그리고 다른 부처님이 아미타불을 억념한다는 것은 이상할지 모르나, 17에 제불청양원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무량수불은 아미타불의 이명(異名)이거니와 이것이 별개의 부처님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밀교에서는 태장계의 부처님으로서는 무량수불, 금강계의 부처님으로서는 아미타불을 세워 구분하고 있는데, <십주비바사론>이 나타날 당시의 인도에서도 별도로 보는 견해가 있은 것 같다.

389

저 부처님(아미타불)의 본원의 힘을 관(觀)하면, 기대에 어긋나는 자가 없어서 능히 공덕대보해(公德大寶海)를 총족시키게 된다. [淨土論]

*공덕대보해: 공덕의 무량함을 바다에 비유한 것.

390

무량수불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때 어떤 방편에 의해서건 내 이름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내 나라(淨土)에 태어나게 할 것이니, 이는 내가 일찍이 발원(發願)한 바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수승(殊勝)한 원이 달성되었거니, 다른 세계로부터 내 앞에 와서 태어나는 중생은 반드시 퇴전함이 없게 할 것이다. 만약 보살이 있어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원하거나, 그들의 나라에 내 나라같이 만들고자 원하거나, 또는 내 이름을 가지고 많은 중생을 해탈시키고자 한다면, 그를 빨리 극락세계로 불러 내 옆에 있게 함으로써 천만억불을 공양케 하리라." [梵天無量壽經]

391

무량수불에게는 8만 4천의 상(相)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상에는 각기 8만 4천의 수형호(隨形好)가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호(好)에는 다시 8만 4천의 광명이 있어서, 그 하나하나의광명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비치사, 염불(念佛)하는 중생을 섭취(攝取)해서 버림이 없으시다. [觀無量壽經]

392

중생이 있어서 무량수결정광명왕여래(無量壽決定光明王如來)의 이름을 듣고 진심으로 백 여덟 번을 칭념(稱念)한다면, 단명한 사람의 목숨이 늘어나리라. [光明經]

393

응당 계념(繫念)하여 부처님의 형상을 염(念)하며 미륵(彌勒)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런 사람들은 일념(一念)사이에 팔계재(八戒齋)를 지니게 되리라. [彌勒上生經]

*팔계재: 하루 밤낮을 한정하여 재가신자가 지킬 것이 요구된 계(戒). 생물을 안 죽인다. 훔치지 않는다. 성교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술을 안 마신다. 몸치장을 안 하고, 노래나 춤을 듣고 보지 않는다. 높고 푹신한 침대에서 안 잔다. 낮 이후에는 먹지 않는다. 이것은 일반 신자에게도 하루 동안 승려 생활을 시키는 형태를 취한 것으로 포살(布薩)이 있는 날, 즉 매월 8일. 14일이나, 15일. 23일. 29일이나 30일에 시행되었다. 포살이란 한데 모여 계(戒)를 어긴 일이 없는가 반성하는 행사다.

394

만약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사 큰 불 속에 떨어진대도 불이 태우지 못하느니, 이 보살의 위신력에 말미암는 까닭이다. 또 큰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경우라도,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얕은 곳에 곧 닿을 것이다. [法華經]

395

삼천대천국토(三千大千國土)중에 가득한 야차(夜叉). 나찰(羅刹)이 달려와 사람을 괴롭히고자 한 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 외는 것만 들으면 악한 눈으로도 바라보지 못할 것이니, 항차 해를 가할까 보냐?
[法華經]

*야차: 사람을 잡아먹는 아귀.
*나찰: 신통력으로 사람을 꼬이고, 또 잡아먹기도 한다는 악귀.

396

시방(十方)의 관세음과 온갖 보살들은 서원(誓願)을 세워 중생을 구하시는 터이매, 그 이름을 부르면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름 외우기를 시시각각 끊이지 않는다면 불꽃이 그 몸을 성하지 못하며, 무기가 부러지며, 노여움이 기쁨으로 바꾸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리라. [高王觀世音經]

397

아침에 관세음을 염하고 저녁에 관세음을 염하여, 시시각각의 행위가 이런 마음에서 일어나고, 부처님을 염하여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사람이 고난(苦難)을 떠나고 고난이 몸을 떠나 온갖 재앙이 무(無)로 돌아간다. [夢授經]

398

미래. 현재의 온갖 세계 속 육도중생(六道衆生)이 임종을 당하여, 지장보살의 이름을 얻어들어 비록 한 마디가 그 귀를 스치기만 한 대도, 이런 중생들은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을 거치지 않게 되리라.
[地藏經]

399

중생이 가지가지로 희구(希求)하는 것이 있거니 근심과 괴로움이 절실하거나 할 때, 충심으로 지장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에 염(念)하며 귀의해 공양하는 사람은, 희구하는 것을 다 얻고 온갖 근심과 괴로움을 떠나게 할 것이며, 각자에 응해서 알맞도록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하고 열반(涅槃)으로 가는 길에 안치(安置)할 것이다. [地藏十輪經]

400

만약 중생이 있어서 제근(諸根)이 성치 못해 지친 나머지 게으르며, 미치고 방일하여 본심을 잃었으며, 거기에다가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질투. 인색. 사벽(邪 ). 교만. 수면(睡眠) 따위의 악이 온통 대단하다 해도, 지장보살의 이름을 불러 마음으로 오로지해 귀의한다면, 이런 엄청난 괴로움을 다 벗어나서 열반에 안주(安住)하여 제일락(第一樂)을 얻게 된다.
[大方廣十輪經]

*사벽: 바르지 못하고 편벽함.

401

"선남자야, 만약 묘길상보살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다 불퇴전의 심경에 머무르게 되느니라."
[不思議神通境界經]

*묘길상보살: 문수보살을 이른다.

염불의 종류


402

무엇이 염불인가? 부처님께서 얻으신 것처럼 나도 얻어지이다 하여, 이같이 염(念)함이다. 이 염불에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함이요, 둘째는 부처님과 보살을 염함이요, 셋째는 부처님의 행위를 염함이요, 넷째는 부처님의 청정함을 염함이요, 다섯째는 부처님의 수승(殊勝)함을 염함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의 불퇴전(不退轉)을 염함이요, 일곱째는 부처님의 교화를 염함이요, 여덟째는 부처님이 끼치시는 이익을 염함이요, 아홉째는부처님의 깨달음을 염함이다. [十地論]


한용운의 [불교대전] 중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雲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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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스님

붓다 2016. 9. 18. 13:43

 

 

수월스님(1855∼1928)

 

중국 북간도에 있던 화엄사(華嚴寺)에서 몸을 다쳐 며칠  머물게 된 어느 독립군 연설 단원에게 들려 준 법문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을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할 것인게 잘 들어 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혔으면 누가 와서 화두 참선법(話頭參禪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가르켜 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켜 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 하고 바로 찾아 주시거든. 그러니 이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남. 요즘은 다 글렀어. 또 말세고 말이야! 모두가 이름과 위치에 얽매이다 보니, 누가 와서 화두를 물을 짝이면 아무렇게나 일러 주고 만단 말이지. 안 일러주면 자신의 이름과 자리 값이 떨어지니께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아홉 번 받았느니, 여덟 번 받았느니 하는디, 이래 가지고서야 워찌게 도통을 한다고 할 것인겨! 지가 꼭 공부하던 화두를 일러 주니께 틀림없이 공부를 이루고 바로 도를  통하는겨. 자신 만만하니께 도통하는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는 한 생각으로 마음을 몰아붙여 오로지 한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쓰잘데기 없는 몸과 마음에 끄달려, 조금 하다가 안 되면 그만 팽개치고 "소용 없다"고 하거든. 이게 다 아상(我相)이 많아서 그런겨.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한가지여. 똑같은 밥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 되는겨. 중이 되려면 처자권속을 죄다 버려야 혀. 모두 다 버리고 뛰쳐나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열심으로 닦아야 혀. 아버질 생각한다든지 어머닐 생각한다든지 가족을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거든. 무슨 공부든지  일념으로 해야 혀. 워찌케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이 일념이 안 되면 이것 저것 다 쓸데없는겨. 그래서 옛날 도통한 도인네들은 부모 형제 모두 내버리고 중이 되어 홀로  공부했던 거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겨. 집에 있으면서 부모님을 열심히 위하면 효도라도 되는데, 이런 효도도 못하고 집을 나와서는 도도 깨치지 못하니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거 아녀. 두 집안에 죄짓지 말고 "워쩌튼 죽어라 혀 보자" 해서 부모 형제 모다 버리고 이렇게 산단 말이지. "한 집안에 천자가  네 명 나는 것보다도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 게 낫다." 이런 말을  옛날부터 많이 들었지.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이 공덕으로 조상의 모든 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以苦得樂)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 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 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사람 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겨. 사람 몸 받고도 성불 못하면 이보다 더 큰 한이 워디 있을겨. 부처님께서도 "나도 너를 못  건져 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 다 쓸 데 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열심히 수행혀라. 이 공부하는 데는 다 쓸데 없다. 오직 이 마음 하나 비우면 그만인겨. 세상에서 마음 비우는 일보담 더 어려운 게 없어. 또 참는 일보담 더 어려운 일도 없어... 스님들과 동포들이 내게 이런 말을 가끔 햐. '스님은 그 고약하고 독한 나쁜 놈 밑에서 워째서 그렇게 여섯 해 동안이나 갖은 욕을 얻어먹음시러 살었냐'고. 내가 수분하에서 지낸 얘기를 워디서 들은 모양이여. 동네 사방에서 그렇게 얘기를 들었내비여. 그 때 나는 내 도를 다 이루기 위해 여섯 해 동안 어떤 젊은 스님 밑에 있었던 겨. 그 젊은 스님이 내게 무신 행패를 부리고 무신 욕지거리를 퍼부어도 나는 한순간도 성내는 마음이 일지 않았어. 나는 그런 내 보림 생활이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던겨. 그러니 그 젊은 스님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스승이었단 말여.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내 보림을 이룬 셈이여. 자네는 뒷날 꼭  중이 되고 말겨. 중이 되더라도  딴 생각 말고 아는 척 하지 말고 어리석게 열심히 공부만 혀라. 공부는 보림이 중요한 뱁이여."
그 때 수월은 수분하에서 조선 사람들이 백여 호 모여 사는 어느 마을에 있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절은 본대 박씨 성을 가진 한약방 주인이 약국 안쪽에 자신의 수행처로 지어 놓고 썼는데, 어느 날 한 젊은 스님이 찾아 와서 사정하는지라 절로 내 준 것이다. 젊은 스님은 이 집에 관음사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되 날마다 수행은 하지  않고 멋대로 살았다. 수월은 바로 이 젊은 승려에게 온갖 욕설과 행패를 당해 가며 여섯 해 동안 말없이 지냈다는 것이다. 여섯 해가 되던 해, 남만주의 봉천에 사는 아편 장수 두 사람이 찾아와서 이 젊은 스님을 꾀어 간 지 한 달 뒤에 수월도 이 곳을 떠나 나자구 송림산으로 갔다고 한다.

 

 

 

 

어느 날 수월스님께서 만공스님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숭늉 그릇을 보이며 말씀하셨다. "여보게, 만공. 이 숭늉  그릇을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 마디로 똑바로 일러 보소." 만공스님이 문득 숭늉 그릇을  들어 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는 말없이 앉아 있자 수월스님이 말씀하셨다. "잘혔어, 참 잘혔어" 수월 스님은 이  법담을 나눈 뒤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뒤 만공스님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였다.    

 

- 달을 듣는 강물, 해냄,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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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북인도의 조그만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이 붓다에게 물었다.
"수많은 수행자들과 성직자들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미심쩍고 의심스럽습니다."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경전에 씌어있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그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붓다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제자들이 슬피 울었다. "우리는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가르침에 의지하라."


어떻게 괴로움을 없앨 수 있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 중에 개와 사자의 비유가 있다. 개는 돌을 던지는 사람은 제쳐두고 날아온 돌을 물고 공격한다. 그 개에게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괴로움 자체를 없애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반면에 사자는 활이나 총은 신경쓰지 않는다. 쏘는 사람을 공격한다.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어느 날 의혹에 가득 찬 제자 한 명이 붓다에게 물었다. "세상은 영원합니까.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우주는 유한합니까. 우주는 유한하지 않습니까. 영혼은 육체와 같습니까. 영혼은 육체와 같지 않습니까."
붓다는 제자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어느 사냥꾼이 숲에서 독화살을 맞고 이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으며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이며 화살 끝에 묻은 독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것들을 따지기 전에 먼저 화살을 뽑아내야 한다.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마음은 항상 과거와 미래를 떠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몸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느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에 대해 완전한 관찰자가 될 수 있을까.


전쟁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수천 번 정복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정복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전사이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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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장구대다라니

붓다 2016. 9. 11. 16:42

 

신묘장구대다라니 21독, 송광사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바 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타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야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레 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리나야 마낙 사바하 싣다야 사바하 마하 싣다야 사바하 싣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나다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 간타 이사 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 니바 사나야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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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없이 살 줄 알라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 법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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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안스님 인터뷰

붓다 2016. 8. 28. 00:11

 

따지고, 망상하고, 집착하는 생각부터 비워야 합니다.”

송광사 천자암 조실 활안스님은 매일 새벽 2시부터 예불과 천도재를 올린다. 매년 100일간 방문을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閉關精進)도 출가 이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천지가 지혜와 복을 주는 게 아니고 각자 타고난 생명이 자기를 밝히면 그 밝기가 태양을 뛰어 넘는다." "마음의 중심이 선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밝아 혼자만 행복한 게 아니라 중생이 다 그 혜택을 받게 된다"고 강조하는 활안스님. 엄격한 수행가풍으로 뭇 선객들의 귀감이 되는 활안스님의 가르침을 만나보자.

 

활안 스님은 평생 빈틈없는 수행으로 일관했다. 열 아홉 살에 출가해 ‘나고 죽는 그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生滅未生前 是甚麻)’를 화두로 참선 정진했다. 스님은 천자암으로 오기 전 오대산에 30년 가까이 머물렀다. 사진 왼쪽이 활안스님, 오른 쪽이 학산스님이다.

저는 1926년 3월, 전라남도 담양군 두메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쉰이 넘으셨고 어머니가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저를 낳으셨죠. 6남 1녀 중 막내아들로 제가 늦둥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조금 남달랐다고 하더군요. 여섯 살 때 누나가 제사 상에 먹던 김치를 갖다 놓은 것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상에 새 것, 좋은 것 갖다 놓으면 안 돼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조숙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제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채독증(菜毒症)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저는 전북 순창군에 있던 외가에서 살다가 외가를 나와 남의 집을 전전하며 농사 일을 봐주며 지냈지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채독증(菜毒症)으로 죽을 고비를 맞았습니다. 몸이 퉁퉁 붓는 병을 얻어 3년 동안 원인도 모른 채 투병을 했죠.

제대로 돌봐주는 이 하나 없었고 “이렇게 죽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죠. 동네 아주머니들이 “ 저 아이는 곧 땅 밥을 먹을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닷새 안에 병이 낫지 않으면 땅 밥 노릇하러 땅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다짐까지 했습니다. 매일 거리를 헤매다 집으로 돌아와 허공에 대고 이런 원망을 했어요. "허공은 들으시오. 나를 결국 죽이려고 하는가, 공로도 없이, 계산이 안 틀리오? 당신은 계산이 있어서 생명을 탄생시켰을 터인데, 그러지 말고 생각을 바꾸시오. 나를 살릴 수만 있으면, 살려만 놓으면 이 나라를 내가 도울 겁니다."

다음날 한 노인이 찾아왔더군요. 당시 육십 대 노인이었는데 곰방대를 들어 불을 붙여 물면서 제가 살아갈 방도를 일러주었어요. “야, 내가 네 눈을 보니까 무슨 병이 든 게 분명하다. 너 내 말 안 들으면 며칠 안으로 죽는다. 내 말을 듣기만 하면 구사일생으로 산다.” 저는 병이 낫기만 하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노인에게 매달렸죠. “소 잡는 곳을 찾아가서 소 피를 먹으면 낫는데 그때 채소나 과일을 먹으면 그게 더해지니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소 피를 마시면 살 수 있다는 노인의 말을 듣고 장터로 떠났죠.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한 장터였어요. 소고기 파는 집 근처로 가서 이리 저리 눈치를 봤죠. 남편이 고기를 팔다가 밥을 먹으러 가고 부인이 가게를 보는 한가한 틈을 타서 다가갔어요. 주인 아주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자 쳐다보더군요. 하소연을 했죠. “우리 고향은 아랫녘 어디인데 못살아서 고향을 나왔고,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도 채독증이라는 병을 얻어 죽을 날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 피를 먹으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아왔으니 저를 좀 살려주시오. 소 피만 먹게 해준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여주인이 제 말을 듣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고요. 조금 있으니 남편이 돌아 왔어요. 여주인이 남편에게 제 이야기를 하니까 남편은 제 얼굴을 쳐다 보더니 일단 뭐라도 좀 먹이라고 하더군요. 여주인이 뚝배기에다가 선짓국을 말아주었어요. 너무 굶었던 탓에 뭘 먹어도 쏟아냈는데 선짓국은 잘 받더군요. 등에 붙은 배가 앞으로 쑥 나올 정도로 오랜만에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었지요.

고깃집 여주인이 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러자 남편이 “뭐하러 집에까지 데리고 들어왔냐”며 호통을 쳤죠. 키워봤자 저희 부모가 와서 데리고 가버릴 거라고 화를 냈지만 그래도 저를 쫓아내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그 집에서 지내며 하루에 두 번씩 약을 먹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꿈을 꾸었는데 북쪽 하늘에 별이 보이더군요. 별에서 말이 들려왔어요. 뭐라고 하느냐면 “아무 때라도 죽게 되거든 우리가 살릴 거니까 죽는 걱정은 하지 마라.” 그 꿈을 꾼 후에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까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몸에 부기가 빠졌고 2년이 되니 혈색이 돌더군요. 그렇게 건강이 회복되었고, 그 후로 저는 제가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60년대, 오대산 북대에서 정진하며 본인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게으름’에 대해서는 단호했던 활안스님. 그 모양이 어찌나 무섭던지 호랑이띠인 스님은 자연스럽게 ‘오대산 호랑이’로 불렸다.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 때 거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앞쪽에 앉은 이가 활안스님이다.

열여섯 살 때 4년 간 일제 강점기 군수공장에서 일했어요. 스무 살 때 광복을 맞으며 외숙모의 손에 이끌려 전북 순창 순평사를 찾았죠. 그때까지도 고통 받는 육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당시 순평사에는 효봉스님의 은사인 석두 노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셨는데 그분이 정성껏 석가모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천지 지간에 모든 생명의 가장 높은 어른을 비로소 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저는 “평생 저분을 모셔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석 달 동안 석두스님의 법문을 듣고는 “바로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에 머물겠다는 발심을 하고 곧바로 행자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고된 행자생활을 마치자 노스님께서 득도수계를 허락해 비로소 온전한 출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요.

행자시절에 효봉스님과 석두스님은 저를 두고 "저 사람은 중 될 사람이고, 남보다 크게 될 거라"고 말할 정도로 행자생활에 열심이었어요. 순평사에 있다가 남원 실상사로 자리를 옮겨 공부에 매진하고 절 살림을 도맡았어요. 이후에 덕숭산 수덕사로 수행처를 옮기고 월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고, 수덕사, 법주사, 불국사를 오가며 월산스님과 금오 노스님 회상에서 정진을 거듭했습니다. 오대산 적멸보궁과 북대를 오가며 30여 년 간 수행한 시절은 지금도 수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하대요.

광양의 백운산에서는 4년 간 참선수행을 하면서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손수 마련했지요. ‘나고 죽기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참선 수행을 했죠. 토굴에 가려면 마을에서 세 시간이나 걸어가야 할 만큼 깊은 산중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니 따로 시간을 내어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그것이 바로 수행이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할 때가 있죠. 어느 날, 그날도 해가 넘어간 줄도 모르고 논에서 일을 하다가 낫으로 손을 베고 말았죠.

사방이 어두우니 얼마나 깊이 베인지도 몰랐습니다. 하던 일을 끝까지 마쳤죠. 방에 와서 촛불을 켜 보니 방바닥에 피가 떨어지더군요. ‘누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피는 덜 흘렸을 건데, 가난에도 암가난 숫가난이 있다던데, 살수록 어찌 이리 외롭다냐!’ 그렇게 홀로 외쳤습니다. 손을 동여매고 부엌에 가서 찬밥으로 허기를 채우는데, 피를 흘리면서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더군요. 쓸쓸한 마음이 밀려오고 또 쏟아진 피를 보니 웃음이 나고요. ‘내가 이래야만 성불을 하는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밤 밥 한 술 떠먹고 죽비 세 번 치고 참선에 들었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지금 사는 것도 꿈속이지만, 비몽사몽간에 9척이나 되는 여래가 나타나 자신의 오른팔로 베개를 삼아 누이고는 말씀하셨죠. “너만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들도 다 그렇게 외로웠단다.” 이 말씀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죠. 저는 여래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게 남아 일어나자마자 유리 안에 모셔진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이렇게 기도했어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가진 물심(物心)을 탁 털어서 나에게 다 주시오. 내 배가 부르면 다 주지, 안 줄 것이 없지요. 내 말 안 들으면 뭣 하러 거기 앉았어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밥 한 술 뜰 때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이시여! 당신이 부처님이라면 말없이 들으시오. 내가 과거 세상에는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 상황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끝없이 의지해 왔지만 이제 끝없이 많은 상대를 모두 빛이 나게 하고 상대방이 다 보람을 느끼도록 하고 나를 의지하는 곳에 기쁨만 주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몸이 고된 것도 큰 공부입니다. 특히 수행자는 터럭만큼이라도 게으름에 빠져서는 안되지요. 수행을 할 때는 추상같이 해야 하지만, 항상 수행자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깨달으면 부처요, 미혹하면 중생인데 출가한 지 오래되고 나이가 많다고 공부를 게을리하고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한다면 중생과 같으므로 지옥에나 가야지요. 깨달음이란 생사와 같아서 전후고저(前後高低)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해도 후회만 남게 되는 것이 절집안 공부"라고 말하는 활안스님. 1968년 43세 해인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 첫 번째가 활안스님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진전이 없는 것은 일념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앉아서 온갖 쓸데없는 중상, 망상만 찾아들어 결국 허송세월만 보냅니다. 금생에 반드시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원력으로 “이 뭣고(是甚)”를 참구하면 시간이 흘러도, 옆에서 시끄러워도,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잘 먹고 못 먹고 하는 소소한 일은 다 놓아 버리고 모든 생각을 오로지 화두에 쏟아야 하지요. 그러면 다른 생각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고, 붙을래야 붙을 것이 없습니다.

바늘로 살을 찌르면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듯이 모든 망상이 다 끊어져 화두가 아주 강도 높게 집중되고 다른 사람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할 정도로 화두에 푹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흐르다가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화두가 타파되지요. 만사를 잊은 가운데 화두일념이 흐르는 물과 같이, 떠도는 구름과 같이 지속되다가 기연이 맞닿으면 화두당처(話頭當處)가 드러납니다. 만물이 생장하듯 화두 공부도 진실하게만 지어가면 자연이치와 똑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공부가 무르익어 모든 잡념은 물러가고 하루 한 생각만 또렷이 드러나게 되지요.

활안스님은 우리에게 ‘왜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의 거침없는 할(喝)과 방(棒), 몸소 실천하는 운력(運力), 엄격한 수행가풍은 뭇 선객들의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설악산 봉정암 탑에서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이 활안스님이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에서 유, 무의 생명이 탄생되어 살아가는 길은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동식물이나, 생명에 해당되는 것은 모두 같기 때문이죠. 끝없이 밝고, 끝없이 어둡고, 끝없이 자유롭고, 끝없이 부자유하며, 걸어가는 것까지 모두가 똑같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시작했는데 생명을 놓아 두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空)입니다. 하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생겨도 무생(無生)입니다. 무생지(無生地)에서 탄생하면 그 생 자체에 하자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큰 것은 닦는 것이 아니고 쌓는 것이 아니요, 바로 보았을 때입니다.

그릇이 확실하다면 다 수용하고 심신이 공(空)해야 합니다. 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 그릇에 차이가 있다면 지구가 천 번 만 번 생겨 없어질 때까지 노력을 해야 바로 보고 쓸 줄 아는 이치에 도달하게 되지요. 장사를 하든지 싸움을 하든지 도를 닦든지 염불을 하든지 정치를 하든지 문학을 하든지 자기가 노력하는 과정은 제불 성현과 같습니다. 잘살려면 밝아야 하고, 밝으려면 천지의 지혜가 확실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중생도 공부는 상근기(上根機, 부처님 말씀을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첫 순간에 바로 깨달음을 얻는 바탕을 가진 사람. 중국의 육조 혜능(慧能) 같은 경우이다. 문화원형용어사전), 소승, 대승이 필요 없고 일등이 필요 없습니다. 공부가 안되는 것은 마음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중생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보고, 오직 굳은 마음만 정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해지면 뜨거워서 견딜 수 없도록 노력을 해야 타 버리고, 차가워서 견딜 수 없도록 노력해야 얼어 버립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잊을 정도로 공부를 해야 성취가 이루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행복이지요. 행복하려면 밝아야 합니다.

마음도 밝아야 하고 보고 듣는 것도 밝아야 합니다. 밝으면 시비할 것이 없습니다. 어두운 탓으로 시비가 생기는 것입니다. 밝기 위해서는 견성대각(見性大覺)이 있어야 하는데 견성대각(見性大覺)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생산 지혜입니다. 자신이 못나고 어리석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근본자리인 마음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정해지면 노력하게 되고, 노력이 뒤따르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견성도 본인 마음이 정한 대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노력은 지혜를 얻게 되고 자연법의 이치를 터득하게 합니다. 선(禪)의 요체는 대우주와 자연 생명의 이치를 바로 보고자 함입니다. 선(禪)은 지고 우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이를 위한 노력이 선(禪)의 시작입니다. 선가(禪家)에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前)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禪)은 언어나 문자,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느끼고 맛보는 것밖에 달리 선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덕을 쌓고 질서에 따라 열심히 생활하면 그것이 우주와 성현에 공양 올리는 일이고 국운을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심신이 하나로 합쳐져 성성(惺惺)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면 늘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이 우주생명의 근원이 되고 우주생명이 곧 한 생명입니다. 모든 생명마다 길이 활짝 열려 있고 생산법이 확실합니다. 모든 생명이 세포 하나하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한 생명의 뜻을 직시하여 궁극에는 마음 근본자리가 얼마나 밝은가 알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잘살려면 사는 법을 알아야 하고 사는 법을 알려면 마음이 밝아야 합니다. 밝으려면 보아야 합니다. 아주 큰 것은 닦는 것도 쌓는 것도 아니고 바로 보는 것입니다.

지구는 공전 자전과 풍마(風磨)로 깎아지고 먼지로 분해돼 공으로 돌아갑니다.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다함이 없는 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성청정을 견성하는 원리이지요. 견성은 부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생명의 다함이 없는 기본 원천입니다. 지혜는 상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형상도 공도 아닌 길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복은 하늘이 주고, 진리가 주고, 자연이 주고, 천지가 주고, 상대가 준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고 씨앗입니다. 풀 한 포기 모기 한 마리까지라도 그 생명이 생성된 뜻을 안다면 우주 시방 법계의 모든 생명의 핵심이 되고 전체의 생명은 한 생명의 주인이 되는 이치도 알게 됩니다.

1974년 구산 스님의 권유로 천자암을 찾은 활안스님. 당시 천자암은 보조 스님이 주석했던 암자였지만 그나마 남았던 전각 한 채도 허물어져 가고 있었을 정도로 초라했다. 활안스님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양식은 물론 나무와 기왓장을 나르며 법당을 올렸고, 법왕루, 나한전, 종각도 들였다. 지금의 사격(寺格)은 온전히 활안스님의 원력으로 일군 것이다. 천자암에서 찍은 사진으로 왼쪽 첫번째가 활안스님이다.

삶을 살아가는 생활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일종의 숫자놀음과 같아서 크나 작으나 간에 내 삶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숫자가 파악이 되면 먼저 납득을 하는 겁니다. 내 삶의 숫자가 100인지 200인지 그렇게 되면 그 숫자를 분해할 수도 있고 능히 조립할 수도 있게 됩니다. 조립이 잘 되면 모든 중생 한 사람 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크거나 작은 대로 그 존재의 삶은 끊임없이 빛이 납니다.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생을 보는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마치 아가에게 젖을 잘 먹이고 나서 재롱 부리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처럼 자식 잘되는 것이 제일인 어머니의 마음처럼 행복합니다. 그것이 자비의 마음입니다.

삶의 숫자 놀음을 파악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본래의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 마음 자리를 깨닫고 나면 우주만물이 생기고 죽는 법이 이루어지기 전의 본래의 내 모습이 바로 보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다른 종교에서처럼 어떤 절대자가 나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내 대신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바로 나만이 나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아이고,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지혜가 없어서’ 하면서 수행을 미루고 둘러대고 변명을 합니다. 이건 다 거짓말입니다. 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하기 싫어서입니다. 변명도 시방삼세 부처님이 꼼짝할 수 없는 큰 변명을 하면 성불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게으름과 고통만 남습니다. 왜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안 해야 할 일은 해 놓고서,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흉보고 그럽니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괴롭고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입니다. 내가 한 생각, 설계를 잘 하고 못 하고 하는 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삶은 내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이 몸뚱이는 마음의 옷입니다. 몰랐을 때에는 몸뚱이의 생사가 둘이지만, 알고 나면 생사가 본래 공한 것입니다. 마음의 옷이 더러우면 빨아 입고, 떨어지면 기워 입고, 못 쓰게 되면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 입어야겠다고 마음 먹어야 합니다. 무슨 마음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끝없이 빛이 날지, 판단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80세가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도량석을 하고 종송을 하고 우렁차게 목탁을 치며 끊임없이 염불 정진한다. 새벽도량석 중인 활안스님 모습.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많이 흐르고, 비가 안 오면 굳게 마련이니, 모두가 살아가는 현상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불교가 발전하지 못합니다. 인재가 없어요. 국가와 우리 사회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종단에 없단 말입니다. 개개인 불평만 있지 공심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원망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 심성이 단박에 밝아야겠다고 다지고 또 다져야 합니다. 모든 노력과 공로가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상식이 남아도니 귀신이고, 뒤처리를 못하니 등신입니다. 자기 권한 하나도 없이 부화뇌동하여 물질을 쫓으니, 더 분석해 들어가면 사기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이 마비되어 있는 것이지요. 불교가 사회적으로 살 수 있는 방안을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마음 자리가 정해지지 않으면 내 것도 다 남의 것입니다.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지요.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되어 행복하기 위해서는 밝아야 함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어두우면 죽도록 일해 놓고 끝에 가서는 한바탕 얻어맞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내 팔자야’하고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이 어두운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음이 밝아 놓으면 그 밝은 내용으로 설계를 하고 또 노력을 하고 뒤처리를 다 해도 밝은 지혜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잘 해내고, 이듬해 논밭에 농작물 심는 일만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요. 바닷물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항상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은 밑바닥은 언제나 이 못보다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세속에 살면서 우리들의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함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거칠고 힘든 일을 당해 울고 웃을지라도 속마음은 돌보다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해야 합니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바닷속 고요가 출렁이는 파도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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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어디서든 물러섬이 없는 대신심, 부처님 제자라면 남을 돕고 베푸는 것이 권리가 되어서는 안되고 의무가 되야한다. 대분심을 내고, 참선할 때 화두에 집중하는 대의심을 품어야 한다.

둘째 큰 원력을 가져야 한다. 원력없이 사는 것은 마구니의 삶과 마찬가지이다.

타인이 선을 행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같이 즐거워만해도 같은 공덕이 있다.

셋쩨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용기가 있어야 정법을 지킬 수 있다.

넷째 심행을 세밀하게 해야한다.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삶을 살아라. 작은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큰 것도 지키기 어렵다.

부처님 말씀에 선물을 할 때는 받는이가 흐뭇한 것을 하는 것이 좋다.

꿀벌이 꿀을 딸 때 꽃잎을 건들이지 않는 것처럼, 돈을 벌 때에도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돈을 벌면 안된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을 알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육근(안,이,비,설,신,의)을 통해서 마음을 볼 수 있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AND

 

천하의 선객 혜월(慧月)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운봉 성수(雲峰 性粹) 큰 스님은 1889년 음력 12월 7일, 부처님 성도일 전날 밤에 경북 안동에서 출생했다. 
 
속가의 성씨는 동래 정(鄭), 이름은 성수였고 운봉은 법호이다. 
 
13세 때 부친을 따라 경북 영천 은해사에 불공을 올리러 갔다가 발심하여 김일하 스님께 의지하여 출가 득도하였고, 23세에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만하 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금강산, 오대산, 지리산 등 천하의 명산고찰을 찾아다니며 당대의 선지식들을 친견하고 고행정진하던 중 호남땅 백암산 운문암에서 홀연히 깨달음을 얻고 게송을 읊었다. 
 
문밖에 나왔다가 갑작스러이
차가운 기운이 뼛속에 사무쳤네 
 
가슴 속에 오랫동안 걸렸던 물건
활연히 사라져서 자취도 없네 
 
서릿발에 날리는 달밤을 밤에
나그네들 헤어져 떠나간 다음 
 
오색단청 누각을 홀로 서서
공산에 흐르는 물 굽어 보누나 
 
운봉은 곧바로 부산 선암사로 혜월 스님을 찾아뵙고 점검받기를 청했다. 
 
어느 날 혜월 스님께 물었다.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어느 곳에 안신입명(安心立命)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혜월 스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이에 운봉이 혜월 스님을 한 대 치면서 한마디 했다. 
 
"살아있는 용(活龍)이 어찌하여 썩은 물에 잠겨있습니까?" 
 
그러자 혜월 스님이 반문했다. 
 
"그럼 너는 어찌하겠느냐?" 
 
이에 운봉이 불자를 들어 보였다. 
 
그러나 혜월 스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러자 운봉이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스님, 기러기가 창밖에 지나간 것을 모르십니까?" 
 
혜월 스님은 그제서야 하하하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속일수는 없구나." 
 
그리고 혜월 스님은 운봉에게 전법게를 내렸다. 
 
일체 함이 있는 법은
본래 진실상이 없는 것 
 
저 상에 만일 상이 없으면
곧 그대로 견성이니라 
 
모든 상은 본래 상이 아닌 것
모양 없고 또한 머무름 없으니 
 
이와같은 이치를 바로 알면
이것이 견성한 사람이니라 
 
이 때 '운봉'이라는 법호를 내려 받았으니, 이후 운봉은 번뜩이는 선지를 휘날리며 몰려드는 후학들을 제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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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요.....? 이게 무슨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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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윳따 니까야 : 6 브라흐마 상윳따 1:10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 때 꼬깔리까 비구가 부처님께 와서 말하였다.

"부처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사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사악한 욕망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꼬깔리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훌륭히 행동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 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똑같이 부처님께 와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사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런 후 얼마 되지 않아 꼬깔리까는 종기가 생겨 점점 커져서 결국은 그 병으로 죽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관련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가 생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찍는다.

 

비난할 것은 칭찬하고

칭찬할 것은 비난하니

입으로 불운을 만들어

행복을 얻지 못한다.

 

바른 길을 간 훌륭한 이에게

증오를 품는다면

그 불운은 무엇보다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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