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얀마의 사찰에 출가한 승려가 체험담을 정리한 것으로 외계인이나 수행에 관심 있는 분의 참고가 되길 바란다.

펌 [www.ntdtv.com 2012-08-11]


본인은 금년 46세이며 승려가 된지 20여 년이다. 고향은 중국 윈난(雲南)성이지만 미얀마 멀라 사원으로 출가했다. 우리 고향은 불법(佛法)이 성행해 집집마다 부처를 믿는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면 가족은 모두 영광으로 생각한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나는 태어나서 한 달이 되자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1990년에 출가했는데 25세였고 큰 아들은 8살이었다. 삭발하던 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축복했고 아내도 아주 기뻐했다. 우리 고향은 이런 풍속이 있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 삭발하고 출가하면 그의 가족들은 좋은 대우를 받는다.

출가한 사원에 승려는 나를 포함해 10명도 되지 않았다. 사부님은 늙으셨는데 말이 적었지만 인근 주민들은 존경했다. 사부님의 가르침 아래 수행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사찰은 소승불교며 석가모니 부처만을 조존(祖尊)으로 모시고 기타 부처나 보살은 다 승인하지 않았다.  

수행은 농사짓고, 좌선하고 경문을 읽는다. 하지만 나는 글을 몰라 경문을 읽을 줄 몰랐다. 사부님은 글을 알게끔 강요하지 않았다. 사부는 글을 모르는 것은 좋은 일로 불경을 볼 줄 모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면서 계율을 엄수하고, 좌선하고 참선할 것만 요구하고 경문 읽는 것을 면해 주었다. 후에 어떤 기연을 만나 글을 알게 되었다.

소승불교는 계율로 마음을 다잡고 입정(入定)하며 개오(開悟)한다. 사형과 사제 사부까지도 입정하기 어려워했다. 일 년간 진정한 입정이 몇 번 되지 않았지만 3개월 수행 후 좌선하면 입정할 수 있었다. 많은 거사들도 좌선하지만 입정한 느낌이 없다. 입정은 바로 이러하다. 가부좌하고 앉아 잡념이 없어질 때면 일념이 하나도 없이 조용하다. 고요함 속에서 인체 감각 기능이 전부 사라져 금방 몇 분을 지나거나 몇 초를 지난 감각이지만 출정(出定)하면 몇 시간이 지나갔다. 사부는 입정할 수 있는 것은 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1991년 어느 날 밤, 사부는 우리 절의 모든 승려를 데리고 석가모니 법상 앞에 둘러앉아 좌선했다. 나는 입정했는데 다른 때와 달리 1시간 정도 입정한 감각이 들었다. 출정한 후 사형들은 부처 앞에서 7일 동안 입정했다고 알려주었다. 7일 사이 내 정수리 위에 일곱색 빛이 돌았는데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지만 빛이 어디에서 온 건지 똑똑히 말하지 못했다.

출정 후 며칠 지나 눈을 감고도 물체를 볼 수 있는데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뚜렷했다. 사부에게 무슨 원인인가 물었는데 천안통이 열린 것으로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 후 더 부지런히 수행했다. 1992년 초 어느 날 아침, 불상에 절을 올릴 때 갑자기 석가모니 법상이 밝은 빛을 크게 발함과 동시에 불같은 열기가 정수리로 들어오면서 점점 온몸에 가득해짐을 발견했다. 흐리멍덩한 상태로 진입하면서 시간이 정지된 듯 했다. 감각은 아주 미묘해 꿈속에서 더운 물로 목욕을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갑자기 자신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문득 모든 것을 깨달은 감각이 들었고 천안통은 더 발전했다. 그 순간 법상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의 법신을 보았으며 전생(前生), 전세(前世)의 많은 일이 기억났다.  
 
나는 과거 두 차례 모두 출가하여 수행했는데 생생세세 쌓은 죄업이 커서 장애가 겹겹이 쌓여 정과(正果)를 얻지 못했다. 원적(圓寂)할 때마다 다음 생에 계속 수행하려는 소원을 품었기에 불문에 들어와 전생의 인연을 계속했다. 과거 두 차례 수행에서 죄업은 없어지고 공덕을 쌓았기에 이번 수행은 쉬웠다.

이런 근기와 3생의 홍원으로 의지만 확고하다면 금세에 정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전생을 기억했을 때 석가모니 법신이 안타까운 사실을 개시해 주었다. 자신이 전한 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정과를 얻을 수 없으며 부처도 세간에서 손을 떼고 인간의 일을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길한 소식을 듣고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이 인간에게서 손을 떼고 가면 당신을 신봉하는 제자들은 누가 제도하는지 물었다. 석가모니 법신은 한 사람이 가면 자연히 8만4천 법문 중의 다른 한 사람이 와 당신들을 피안의 길로 제도할 것이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부처님이 나에게 알려준 상황을 사부와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었다. 사부님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피안으로 가는 법을 찾아 행각하겠다고 했다.

1992년 3월 사부님과 사형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절을 떠났다. 한 푼도 없이 바리때 하나를 지니고 행각의 길에 나섰다. 수행 중 깨달음과 행각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을 말하겠다. 외계인에 대한 사실은 행각하면서 봉착했던 일로서 차차 알려 줄 것인즉 기다려 주길 바란다. 내게 천안 통이 있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이 이런 것에 흥미를 느낀다. 천안은 사람의 송과선인데 도가에서 말하는 니환궁(泥丸宮)이다. 사람은 송과선이 있는데 수련하여 에너지를 강화하면 천안이 열린다. 이는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천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과 다른 개념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물건을 보면 한 방향, 한 방면만 볼 수 있지만 천안으로 보면 사면팔방, 입체적 홀로그램으로 본다. 척 보면 사면팔방, 좌우아래, 안에서 밖에까지 모든 정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을 볼 때 육안으로 보면 한 측면, 표면만 보이지만 천안으로 보면 모든 세포를 똑똑히 볼 수 있으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똑똑히 볼 수 있다. 천안이 열린 후 나의 전생이 기억나자 글도 알 수 있었는데 중문 번체자였다. 간체자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전이나 책을 가져다 놓으면 펼치지 않고도 훑어보면 다 알았다. 첨단기술은 어린애 장난감같이 한눈에 다 꿰뚫어 볼 수 있다. 

불가에서는 천안을 다섯 단계로 나눈다.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다. 천안이 열렸을 땐 육안 단계였고 행각을 시작했을 땐 법안 단계여서 홀로그램으로 사람, 물체를 보았고 한 생명의 지난 3세의 경력과 3세의 부부인연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볼 수 없다. 거기까지 보려면 불안까지 통해야 될 것 같다.

천안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의 육안은 보이는 빛만 볼 수 있다. X선, 감마선은 사람이 볼 수 없지만 감마선보다 경도가 강한 광선은 많다. 송과선은 이런 광선을 보거나 감지할 수 있기에 인체를 투시하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일반인의 송과선은 봉쇄돼 있는데 수행하면 열려 물체를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뭘 생각하는지, 혹은 어떤 사람의 3세 인연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은 대뇌의 90%가 막혀 이용할 수 없다. 둔한 사람은 많이 막혀 95%에 달하고 총명한 사람은 적게 막혀 85%정도이다. 어떤 사람은 뇌 절반을 잘라내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남아 있는 대뇌는 기억을 저장하는데 쓴다. 당신의 생생세세 모든 기억이 그 속에 저장돼 있다. 우주정보가 그 속에 있지만 막혀있기에 쓸 수 없다. 이런 정보는 천안으로 보면 영화처럼 나타난다. 소리도 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면 대뇌에 영상이 형성되기에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눈에 다 볼 수 있고 과거 경력도 그렇다.

천안이 열리면 신선, 귀신, 요괴 등 영체도 볼 수 있으며 소통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불법을 들은 사람이기에 차원 낮은 신령을 상대하지 않는다. 신선, 귀신, 요괴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형식은 아주 많다. 각종 존재 방식이 다 있는데 천태만상이다. 하지만 부처와 비할 수도 없기에 그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동물이 불법을 듣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일까? 두 가지다. 하나는 단전(丹田)이고 다른 하나는 니환궁 즉 송과선이다. 단전에는 우주 중의 선천지기(先天之氣)가 저장돼 있는데 이런 기는 음양 양기를 초과하여 또 원기(元氣)라고 한다. 이는 아주 진귀하다. 송과선은 세계의 축소판으로 당신의 영혼은 여기에 찍혀있는데 당신의 선량한 본성의 소재다. 두 가지가 있어야 수련할 수 있으며 불법을 들을 자격이 있다. 사람 몸이 진귀하다 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만물지령(萬物之靈)이라 하는데 사람의 몸에 부처가 남긴 도장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은 송과선이 없으며 단전도 없기에 선량한 본성이 없어 불법을 듣지 못한다. 믿기 어려우면 동물을 해부해 보라. 어떤 동물이든 다 송과선이 없다. 이건 사람만 갖고 있다. 다윈은 원숭이가 천천히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현대의학, 현대과학자들은 송과선을 인류의 퇴화된 3번째 눈이라 하는데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등 영장류 동물은 왜 3번째 눈이 없는가? 이런 동물을 해부하면 송과선이 없다.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천안으로 본 정황인데 다윈은 마왕이 인간 세상에 환생한 것으로 인간 세상에 재난과 변란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진화론을 내놓았는데 신불에 대한 신앙을 흔들어 사람들이 자신을 원숭이에서 변해온 것이라고 믿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정말 다윈의 궤변을 믿었다. 정말 수치스럽고 우스운 일이다. 왜 석가모니가 인간에게서 손을 뗐을까? 사람들이 신불의 진실한 존재를 믿지 않기에 부처가 전한 법은 이런 사람을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도 관계하지 못한다.

신불은 매우 지혜로우며 자비롭고 신통을 갖고 있지만 신불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그것은 사람 마음이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신불(神佛)도 방법이 없다. 현대인은 신불을 믿지 않으며 불법을 수련할 생각도 없지만 동물은 다르다. 동물은 송과선이 없기에 그의 영혼과 대뇌는 봉인이 없어 지혜는 열려 있다. 당신은 동물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못하다. 동물은 무엇이나 다 알기에 온갖 수단으로 인체를 얻어 수련하려 한다. 지금의 진실한 상황이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은 사람 형태이고 사람 말을 하지만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동물 영혼이 인체에 붙어 있다.

지금 중국엔 창녀가 특별히 많은데 어떤 창녀는 생활의 압박과 전생에 진 죄를 갚느라고 창녀로 되었지만 많은 사람은 자발적으로 창녀가 되어 비천한 일을 한다. 자발적으로 창녀가 된 사람은 99%가 여우 혼이 달라붙은 사람이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의 정혈(精血)을 훔쳐 간다. 베이징에서 천상인간이라는 기생집을 조사했다. 거기에서 매음하는 여성은 모두 여우 혼으로 순수한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천안으로 인간을 보면 요사스러운 기운이 하늘을 치솟는다. 왜 창녀와 놀면 수명이 짧아지고 복을 잃는가? 창녀 중에 요괴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의 정기를 훔쳐간다.

식물인간은 육체와 기능도 정상인데 왜 사상의식이 없을까? 그의 영혼은 윤회에 들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식물인간은 몇 년 후에 다시 깨어나는데 기억을 많이 상실하며 지능도 떨어져 있다. 동물 영혼이 붙어있는 것이다. 수련한 시간이 짧고 도술이 옅은 동물이 인체에 붙으면 식물인간은 깨어나지만 지혜도 막혀있어 지능이 크게 떨어진다. 천년이나 팔백년을 수련하여 큰 신통을 얻은 동물이 인체에 붙으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보기에 정상이므로 일반인은 발견하지 못한다.

중국 동북이나 남방 일부 산간지역에서 동물의 위패를 모시면서 집 지키는 신이라 한다. 동물 영혼을 구하는데 그것이 붙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동물이 당신 몸 뒤에 올랐다면 당신의 신체와 사상의식을 교란한다. 그 놈은 당신 단전의 원기를 훔쳐간다. 원기가 없으면 즉시 죽어버려 식물인간도 될 수 없다. 동물 영혼은 잠시 좋은 운을 가져다 줘 부자가 되게 하지만 이것을 미끼로 가장 진귀한 것을 가져간다. 작은 이익을 위해 동물을 숭배하는 것은 천리가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 자신이 구한 것으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신불도 방법이 없다.

(계속)

글/ 행각승(미얀마 사찰 출신)

AND


중노릇하는 법 - 경허선사(鏡虛禪師) 지음


대저 중노릇하는 것이 적은 일이리요 잘 먹고 잘 입기 위하야 중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 되어 살고 죽는 것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니 부처 되려면 내 몸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니,
내 마음을 찾으려면 몸뚱이는 송장으로 알고 세상일이 좋으나 좋지 않으나 다 꿈으로 알고 사람 죽는 것이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는 줄로 알고 죽으면 지옥에도 가고 짐승도 되고 귀신도 되어 한없는 고통을 받는 줄을 생각하야,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궁구하되 보고 듣고 일체 일을 생각하는 놈이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고 모양이 있는 것인가 모양이 없는 것인가 큰가 작은가 누른가 푸른가 밝은가 어두운가 의심을 내어 궁구하되,
고양이가 쥐잡듯 하며 닭이 알 안듯 하며 늙은 쥐가 쌀든 궤짝 좃듯하야 항상 마음을 한군데 두어 궁구하야 잊어버리지 말고 의심하야 일을 하더라도 의심을 놓지 말고 그저 있을 때라도 의심하야 지성으로 하여 가면 필경에 내 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니 부디 신심을 내어 공부할지니라.

대저 사람 되기 어렵고 사람 되어도 사나이 되기 어렵고 사나이 되어도 중노릇하기 어렵고 중이 되어도 부처님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우니 그런 일을 깊이 생각하며,
부처님 말씀이 사람이 된 이는 손톱 위에 흙같고 사람의 몸 잃고 짐승된 이는 온 세상 흙같다 하시고 또 사람의 몸 한번 잃으면 억만 년이라도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하시며 또 항상 지옥에 처하기를 동산에 놀듯 하며 아귀귀신이나 축생 되기를 내집에 있듯 한다 하시며 또 한번 성불하면 다시 죽도 살도 않고 다시 고생을 아니 받는다 하시니 이런 말씀을 자세히 들어 생각하며,

또 이전에 권선사라는 스님은 아침부터 공부하다가 해가 질 때면 다리를 뻗고 울어 가로대 오늘 해도 공연히 지내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고 날마다 그리한 이도 있고 공부하노라고 마음 지극히 먹은 이를 모다 적을 수 없으니 다 죽고 살기를 잊고 먹고 입기를 잊고 잠자기도 잊고 공부하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공부가 될터이니 자세히 생각하며,

이전에 동산스님이 글을 지어 가로대 거룩하다는 이름도 구하지 말고 재물도 구하지 말고 영화스러운 것도 구하지 말고 그렁저렁 인연을 따라 한세상을 지내어서 옷은 떠러지거든 거듭거듭 기워 입고 양식은 없거든 가끔가끔 구하여 먹을지로다.
턱어리 밑에 세 마디 기운이 끊어지면 문득 송장이요 죽은 후에는 헛이름 뿐이로다. 한낱 허환한 몸이 며칠이나 살 것이관대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고 내 마음을 깜깜하게 하여 공부하기를 잊어 버리리요 하시니라.

내 마음을 깨달은 후에 항상 그 마음을 보전하야 깨끗이 하고 고요히 하야 세상에 물들지 말고 닦아 가면 한없는 좋은 일이 하도 많으니 부디 깊이 믿으며 죽을 적에라도 아프도 않고 앓지도 않고 마음대로 극락세계에도 가고, 가고 싶은대로 가나니라.
부처님 말씀에 하시기를 남자나 여인이나 노소를 물론하고 이 법문을 믿고 공부하면 모다 부처가 되리라 하시니 어찌 사람을 속이리오.

오조 홍인대사 말씀이 내 마음을 궁구하면 깨달을 것이라 하시고 맹서하시되 너희가 내 말을 곧이 아니 들으면 세세생생에 호랑이에게 죽을 것이요 내가 너희를 속이면 후생에 지옥에 떨어지리라 하시었으니 이런 말씀을 듣고 어찌 믿지 아니하리요.

공부하는 사람이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 같이 하고 마음을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하고 지혜로 불법 생각하기를 날과 달같이 하야 남이 나를 옳다고 하든지 그르다고 하든지 마음에 끄달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내 마음으로 분별하여 참견 말고,
좋은 일이 당하든지 좋지 아니한 일이 당하든지 마음을 평안히 하며 무심히 가져서 남 봄에 숙맥같이 지내고 병신같이 지내고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귀먹은 사람같이 어린아이같이 지내면 마음에 절로 망상이 없어지나니라.

설사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더라도 비유하건대 똥덩이 가지고 음식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 가지고 흰 옥 만들려는 것과 같애여 성불하여 마음 닦는데 도시 쓸데없는 것이니 부디 세상일을 잘할려고 말지니라.

다른 사람 죽는 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여 내 몸을 튼튼히 믿지 말고 때때로 깨우쳐 마음 찾기를 놓지 말지니라. 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여 오고 의심하여 가고 간절히 생각하기를 배고픈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여 잊지 말고 할지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상일이 다 허망하다 하시고 중생의 모든 하는 일이 다 나고 죽는 법이라 하시고 오직 제 마음을 깨달아야 진실한 법이라 하시니라.

술을 먹으면 정신이 흐리니 먹지 아니할 것이요 음행은 정신 갈려 애착이 되니 상관 아니할 것이요 살생은 마음에 진심을 도우니 아니할 것이요 고기는 먹으면 정신이 흐리니 먹지 아니할 것이요 거짓말은 내 마음에 사심을 기루니 아니할 것이요 도둑질은 내 마음에 탐심을 늘이니 아니할 것이요 파와 마늘은 내 마음에 음심과 진심을 돋우니 먹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머지 일체 것이 내게 해로운 것이니 간섭치 말지니라.

목우자 스님 말씀이 재물과 색이 앙화됨이 독사보다 심하니 몸을 살펴 그른 줄 알아 항상 멀리 여의라 하시니 이런 깊은 말씀을 본받아 행하여야 공부가 순히 되나니라.

부처님 말씀에 한번 진심 내면 백만 가지나 죄가 생긴다 하시니 제일 골내는 마음을 참을지니라.
예전 스님네 말씀이 골내는 마음으로 호랑이와 뱀과 벌과 그런 독한 물건이 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비와 새가 되고 좀스러운 마음으로 개미와 모기 같은 것이 되고 탐심 내는 마음으로 배고파 우는 귀신이 되고 탐심과 골내는 마음이 많고 크면 지옥으로 가고 일체 마음이 다 여러 가지 것이 되어가니 일체 여러 가지 마음이 없으면 부처가 되나니라.

착한 마음이 좋다 하여도 또 천당으로 갔다가 도로 떨어져 지옥이나 축생이 되어가니 착한 마음도 쓸데없고 일체 마음을 없애고 하면 다른 데로 갈 것 없고 마음이 깨끗하야 혼곤하지 아니하면 캄캄한 데로 가지 아니하니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이 부처 되어 가는 길이니 내 마음을 항상 의심하야 궁구하면 자연 고요하고 깨끗하여 지나니 극칙 고요하고 깨끗하면 절로 마음을 깨달아 부처 되나니라. 돌아가지 아니하고 곧은 길이니 이렇게 하여 갈지니라.

이 법문을 가끔 보고 읽고 남에게 일러주면 팔만대장경 본 공덕과 같고 그대로 공부하면 일생에 성불할 것이니 속이는 말로 알지 말고 진심으로 믿어 하여 갈지니라.

산은 깊고 물은 흐르고 각색 초목은 휘어져 있고 이상한 새 소리는 사면에 울고 적적하야 세상 사람은 오지 않는데 고요히 앉아 내 마음을 궁구하니 내게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면 무엇인가.
듣기 어려운 좋은 법을 들었으니 신심을 써서 할지니라. 마음을 너무 급히 쓰면 신병이 나고 두통도 나나니 마음을 가라앉혀 평안히 하여 가라. 조심하라. 억지로 생각하려 말고 의심을 내어 할지니라.

AND

한암스님 이야기

붓다 2017. 5. 15. 16:04

 

방한암(方漢岩) 큰 스님은 조선조 말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 때 우연히 금강산 구경길에 나섰다가 장안사(長安寺) 행름노사를 만나 삭발 출가하였다. 

24세 때에 당대 최고의 선지식 경허대선사를 청암사에서 만나 금강경을 배우던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만약에 모든 상이 상 아님을 안다면곧바로 그 자리에서 여래를 보느니라.

라는 구절에서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개안(開眼)의 기회를 얻었다.

그 후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를 거쳐 평안도 맹산군 도리산에 있는 우두암에서 홀로 참선수행하던 중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홀연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었다.

 

부엌에서 불 지피다/홀연히 눈 밝으니

이로부터 옛길이/인연따라 분명하네

만일 누가 달마스님이/서쪽에서 오신 뜻을 나에게 묻는다면

바위 밑 샘물소리/젖는 일 없다 하리.

 

이 때 한암 스님의 세속 나이는 35.  

한암 스님이 해인사에서 머물고 계실 때, 스승이신 경허 선사께서 정처없는 만행길에 올라 해인사에 오셨다.

경허 선사는 발길을 다시 북쪽으로 돌려 해인사를 떠나면서 한암을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에

간절한 글 한 편과 시() 한 수를 지어 한암에게 전했다. 

 

나는 천성이 화광동진을 좋아하고 더불어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삽살개 뒷다리처럼 너절하게 44년의 세월을 지내다 우연히 한암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선행은 순직하고 또 학문이 고명하여 1년을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평생에 처음 만난 사람인양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 서로 이별하는 마당에 서게 되니,

아침 저녁의 연운과 산해(山海)의 멀고 가까움이 진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즉,

이별의 섭섭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날 사람은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차 있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고 하지 않았던가.

과연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

그러므로 여기 시() 한 수를 지어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변변치 못한 곳에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은 예사라서 어렵지 않지만 뜬 목숨 흩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이 간절한 스승의 글과 시를 받아 본 한암 스님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스승께 바쳤다.

 

서리국화 설중매는 지나갔건만

어찌하여 오랫동안 곁에 둘 수 없을까.

만고에 변치 않고 늘 비치는 마음 달

뜬세상에서 뒷날을 기약해 무엇하리오.

 

그리고 한암 스님은 스승 경허 선사와 헤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스승과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이야 어찌 감히 짐작이나 했으랴.

 

한암 스님께서 한강 건너 봉은사 조실로 계실 때의 일이었다. 

한번은 한암 스님께서 강화도 전등사, 보문사 참배길에 오르셨는데,

이 때 시봉을 들고 있던 수좌는 성관이었다.

지금은 드넓은 다리가 두 곳에 놓여서 강화도 가는 길이 편하지만

당시에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지기 전이라 배를 타고 건너다닐 때였다.

우선 김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가서

거기에서 수십리길을 걷고 걸어서 길상면 전등사까지 가자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버렸다.

게다가 비까지 억수로 퍼부었다.

하는 수 없이 남의 집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인색하기 그지없는 부잣집이었다.

그 부잣집 주인이 거드름을 피우며 스님께 빈정거렸다. 

스님들은 탁발을 나오기만 하면, 보시하라, 나누어 주어라, 그러시던데,

재산이 좀 있다고 해서 허펑허펑 남에게 퍼주기만 하면 그게 옳은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안 쓰고 절약해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게 옳겠습니까? 어디 한 번 대답을 해보시오.”

이때 한암 스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부잣집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주인 어른께서는 오른손을 한 번 펴보시지요.”

손을 펴라니, 이렇게 손가락을 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이다. 주인장께서 지금 손가락을 쫙 펴셨는데, 그 손가락을 오무리지 못하면, 그것은 불구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 그야 편 손을 오무리지 못하면 불구입지요.”

그럼 이번에는 주먹을 한 번 쥐어보시지요.”

, 이렇게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주인장께서 지금 주먹을 꼭 쥐셨는데, 이 손을 펴지 못하면, 그것은 불구입니까, 아닙니까?”

, 그야 주먹을 펴지 못하면 그것도 불구입지요.”

재물도 그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재물도... 그와 같다니요?”

재물도 덮어놓고 허펑허펑 허비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요,

그렇다고 재물을 덮어놓고 움켜 쥐고만 있으면 그 또한 옳은 일이 아닙니다.

손을 펼 때 펴고, 오무릴 때 오무릴 수 있어야 정상이듯이,

재물도 또한 아낄 때는 아끼고, 쓸 때는 제대로 쓸 줄 알아야 옳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한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난 그 부잣집 주인은 그제서야 부끄러워하며 스님을 극진히 모시는 것이었다. 

이 때 강화도 전등사와 보문사를 참배하고 봉은사로 돌아오신 한암 스님은

왜색 승려들이 설치는 꼴을 보다 못해 홀연 봉은사를 떠나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가 동구밖 출입을 끊어버리셨다.

이 때 봉은사를 떠나시면서 저 유명한 한 말씀을 남기셨다.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 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1925년 오대산으로 들어가 천고에 자취 감춘 학()’이 되어버린 한암 큰스님은

1951322일 세수 75, 법랍 54세로 좌탈입망에 드실 때까지 당신의 말씀 그대로 장장 27년 동안 불출동구(不出洞口),

결코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산문 밖으로 나오신 일이 없었다

1941년 일본불교와 차별화하기 위해 뜻있는 우리 스님들에 의해 창종된 불교교단이 바로 조선불교조계종이었는데

이때 한암 스님이 초대 종정이 되셨다.

오대산 그대로 들어앉아 계시면서도 초대종정에 추대된 것이었다.

그러자 당시 미나미(南次郞)총독이 한암 종정 스님을 총독부로 초청하였다.

그러나 한암 큰스님은 불출동구를 접지 않고 일언지하에 미나미 총독의 초청을 거절했다.

이에 입장이 난처해진 미나미 총독은 부총독격인 정무총감 오오노를 오대산으로 보내 배알케 했다.

이때 오오노가 한암 큰스님께 법문을 간청하자 스님은 묵묵히 백지 위에 정심(正心) 두 글자만 써주셨다.

그후 경성제대(京城帝大) 교수로 와있던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명승 사또오가 월정사로 한암 스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큰 절 월정사에서는 급히 한암 스님이 계시는 상원사(上院寺)로 사람을 보내어

한암 스님으로 하여금 월정사로 내려와 사또오 교수를 만나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중들과 김장준비 울력을 하고 있던 한암 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사또오 교수가 상원사로 한암 스님을 찾아뵈었다.

사또오 교수가 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나서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大義)입니까?”

스님은 묵묵히 놓여있던 안경집을 들어 보였을 뿐이었다.

사또오가 또 물었다.

스님은 일대장경과 모든 조사어록을 보아오는 동안 어느 경전과 어느 어록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까?”

스님은 사또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시면서 한말씀 하셨다.

적멸보궁에 참배나 다녀오게.”

사또오가 또 물었다.

 “스님께서는 젊어서 입산하여 지금까지 수도해 오셨으니, 만년의 경계와 초년의 경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스님은 한마디로 잘라 답했다

모르겠노라.”

사또오가 일어나 절을 올리며 말했다.

활구법문(活句法門)을 보여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사또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마디 하셨다.

활구라고 말하여 버렸으니 이미 사구(死句)가 되어버렸군.” 

사또오는 이때 상원사에서 3일을 머물다 돌아갔는데

한암이야말로 일본에서도 찾을 수 없는 큰스님이라고 극구 칭송하고 다녔다.

 

그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한암 큰스님의 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소문을 전해들은 일본정부의 경무국장 이께다(池田淸)

오대산으로 찾아와 한암 스님을 뵙고 한마디 물었다 

이번 전쟁은 어느 나라가 이기겠습니까?”

순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바짝 긴장했다.

스님께 질문을 던진 사람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는 일본의 경무국장.

만일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긴다고 대답하면 길길이 날뛸 것이 아닌가?

스님께서는 과연 뭐라고 대답하실 것인가?

그러나 스님은 태연히 말씀하셨다. 

그야 물론 덕()이 있는 나라가 이길 것이오.”

스님의 이 대답을 들은 일본의 경무국장 이께다는 더 이상 아뭇소리도 못한채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오대산을 떠났다.

 

한암스님은 중국의 한산(寒山)이 한산 깊숙히 들어가 산문 밖으로 평생 나오지 않은 채

저 유명한 '한산시'를 남긴 한산처럼 여전히 오대산 깊숙히 들어앉아 불출동구하며

틈나면 좋아하는 한산시를 읊조리곤 하셨다.

1943년 봄, 전주 청류동 관음선원의 묵담선사가 한암스님께 실참법문을 내려주십사 간청하자

한암스님께서는 한산시 24편을 손수 써서 보내주셨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시도 들어있다.

 

남을 속이는 자 살펴보니

바구니에 물을 담고 달려가는 격

단숨에 집으로 돌아온들

바구니 속에 무엇이 있을꼬.”

 

그렇다.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여가며 직위를 탐내고, ()를 탐내며,

천하의 부귀영화를 향해 미친 듯 달려가지만,

그것들 모두 바구니에 물을 담고달려 가는 격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암 스님은 이 한산시를 통해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에게 큰 가르침을 내리신 셈이다.

과연, 바구니에 물을 담고 달려간들, 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1951. 6.25한국전쟁으로 남북이 밀고 올라갔다가, 밀려 내려왔다를 거듭하고 있던 1.

느닷없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까지 겪어야 했지만,

바로 이 무렵 오대산에서는 밤낮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국군장교가 한 무리의 병력을 이끌고 한암스님과 수좌들이 수행하고 있던 상원사에 들이닥쳤다.

모든 스님들을 절마당으로 모이게 한 뒤, 그 국군장교가 선언했다

공비들이 절을 거점으로 암약하므로 오대산에 있는 모든 사찰은 다 불태워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졌소!

이 절도 불태워야겠으니 스님들은 모두 짐을 챙겨 속히 떠나시오!”

이때 한암 스님은 잠시만 말미를 달라고 한 뒤 안으로 들어가서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는

법당으로 들어가 정좌하고 앉으신 채 국군장교를 불렀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불을 지르시게.”

국군장교가 소스라치게 놀라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서 나가시오!”

그러나 스님은 법당 앞에 정좌한채 요지부동이셨다.

그대는 군인이니 명령을 따르는게 본분이요.

나는 출가수행자니 법당을 지키는게 본분, 둘 다 본분을 지키는 일이니 어서 불을 지르시게.”

국군장교는 범접할 수 없는 한암 큰 스님의 법력 앞에 어쩌지 못한채 부하들에게 기상천외의 명령을 내렸다.

이 절의 문짝들을 뜯어다 마당에 쌓아라!”

그리고 그 국군장교는 문짝만을 뜯어다 마당에 쌓고 그 위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뒤, 총총히 산속으로 사라졌다.

우리의 자랑스런 고찰, 상원사가 불타지 않은채 오늘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은

바로 한암 큰스님의 법력 덕분이었다.

 

 

한암중원 <일생패궐> 중

내가 스물네 살 되던 기해년(1899) 7월 어느 날 금강산 신계사 보운강회(보운강원)에 있을 적에 우연히 보조 국사의 〈수심결〉을 읽다가,

‘만약 마음 밖에 별도로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진리)이 있다.’는 생각에 굳게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록 이 겁(劫)이 다하도록 몸을 태우고 팔을 태우며 (云云), 또 모든 경전을 줄줄 읽고 갖가지 고행을 닦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를 가지고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한갓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떨리면서 커다란 후회(大恨) 같은 것이 들이닥쳤다. 게다가 장안사 해운암이 하룻밤 사이에 전소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더 무상한 것이 타는 불과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일(계획)이 다 몽환처럼 느껴졌다.


신계사에서 하안거를 지낸 뒤에 도반 함해 선사와 함께 짐을 꾸려서 행각 길에 올라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 이르렀다. 그 날 경허 화상의 설법 가운데,


모든 존재는 다 허망한 것이다. 만일 모든 존재가 실존하는 것이 아님을 간파한다면 곧바로 여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안광(眼光, 혜안의 광명)이 열리면서 삼천대천세계를 덮어 다하니 만나는 것마다 모두가 다 자기 자신 아님이 없었다(한암의 첫 번째 깨달음, 1899년).


청암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경허 화상을 따라서 합천 해인사로 가는 도중에 화상께서 문득 이렇게 물으시었다.

“옛 사람(동산양개)이 이런 말을 하였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 가네. 다리만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내가 답하였다.

“물은 진(眞)이요, 다리는 망(妄)입니다. 망은 흘러도 진(眞)은 흐르지 않습니다.”


경허 화상께서 말씀하셨다.

“이치로 보면 참으로 그와 같지만, 그러나 물은 밤낮으로 흘러도 흐르지 않는 이치가 있고 다리는 밤낮으로 서 있어도 서 있지 않는 이치가 있는 것이네.”


내가 여쭈었다.

“일체 만물은 다 시작(始)과 끝(終), 본(本)과 말(末)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본래 마음은 탁 트여서 시작과 끝, 본과 말이 없습니다. 그 이치가 결국은 어떠한 것입니까?”


경허 화상께서 답하셨다.

“그것이 바로 원각경계이네. 《경(원각경)》에 이르기를 ‘사유심으로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반딧불로써 수미산을 태우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끝내는 태울 수 없다.’고 하였네.”

내가 또 여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까?”


화상께서 답하셨다.

“화두를 들어서 계속 참구해 가면 끝내는 깨닫게 되는 것이네.”


내가 또 여쭈었다.

“만약 화두도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상께서 답하셨다.

“화두도 진실이 아니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네. 그러므로 그 자리(잘못된 그곳)에서 즉시 ‘무(無)’자 화두를 참구하게.”


해인사 선원에서 동안거 중 하루는 게송을 하나 지었다.


다리 아래는 푸른 하늘 머리 위는 산봉우리
쾌활한 남아가 여기에 이른다면
절름발이도 걷고 눈먼 자도 보리
북산(北山)은 말없이 남산(南山)을 대하고 있네.


경허 화상께서 이 게송을 보시고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각하청천(脚下靑天)과 북산무어(北山無語) 두 구(句)는 옳지만 쾌활남아(快活男兒)와 파자능행(跛者能行) 두 구는 아니다.”


해인사에서 동안거를 지내고 화상께서는 만행길에 올라 통도사와 범어사로 떠나셨지만, 나는 그대로 해인사 선원에 남아 있다가 우연찬게도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 하안거를 지낸 뒤에 곧바로 만행길에 올라 통도사 백운암에 이르러 몇 달 머물렀다. 하루는 참선 도중 죽비치는 소리를 듣고 또다시 개오처가 있었다(한암의 두 번째 깨달음).


동행하는 스님에게 이끌려 범어사 안양암에서 동안거를 지낸 후 다음 해 봄에 다시 백운암으로 와서 하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경허 화상께서는 청암사 조실로 계셨는데, 급히 편지를 보내 나를 부르셨다. 나는 행장을 꾸려 가지고 청암사로 가서 화상을 뵙고 거기서 하안거를 지낸 다음 가을에 또 해인사 선원으로 왔다.(왜 급히 불렀는지는 알 수 없음, 혹 그것도 격외소식인가?)


계묘년(1903) 여름이 되자 사중(寺中, 해인사)에서 화상을 모시고자 청하였다. 화상께서는 그때 범어사에 계시다가 해인사로 오셔서 선원의 대중 20여 명과 함께 하안거 결제를 하셨다.


하루는 차를 마시다가 어떤 수좌가 《선요(禪要)》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무엇이 실참실구(實參實究)의 소식입니까?”


화상께서 답하셨다.

“남산(南山)에는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北山)에는 비가 내리도다.”


그 수좌가 여쭈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화상께서 답하셨다.

“비유한다면 그것은 마치 한 자 되는 자벌레가 한 자를 가고자 한다면 완전히 한 바퀴 굴러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선어 가운데 一轉語와 같다. 즉 妄에서 眞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한마디―역자 주) 그러시고는 대중들에게 묻기를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하셨다.


내가 답하였다.

“창문을 열고 앉으니 담장이 앞에 있습니다.”


화상께서 다음날 법상에 올라 대중들을 돌아보면서 말씀하셨다.


“원선화(한암중원)의 공부가 개심(開心)의 경지를 넘었구나. 그러나 비록 그 경지가 이와 같지만 아직도 무엇이 체(體)고 무엇이 용(用)인지는 모르는구나.” (이윽고 동산 화상의 법어 가운데 한 대목을 인용하셨다.)


“동산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늦여름 초가을(해제)에 형제들이 각자 흩어지되 일만 리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으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나라면 ‘늦여름 초가을 형제들이 각각 흩어져 가되 길 위의 잡초를 하나하나 밟고 가야 된다.’고 말하리니, 이 말이 동산의 말과 같은가 다른가.”


대중들이 아무 말이 없자 화상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스스로 답하겠다.” 하시고는 아무런 답도 없이 마침내 법상에서 내려 오시어 방장실로 돌아가셨다.(無言, 이것이 대답인가?―역자 주)


하안거를 지낸 뒤 화상께서는 범어사로 떠나셨다. 대중들도 모두 흩어졌으나 나는 병이 나서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하루는 《전등록》을 보다가 약산 화상이 석두 화상에게 설한 법어 중에 “한 물건도 작용하지 않는다(一物不爲).”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심로(心路)가 끊어지는 것이 물통 밑이 확 빠지는 것 같았다(한암의 세 번째 깨달음).


그 해(1903∼1904) 겨울, 화상께서는 북쪽(갑산)으로 가셔서 잠적하셨다. 그 뒤로는 더 이상 화상을 뵐 수가 없었다.


갑진년(1904) 통도사에서 지내던 중 마침 돈이 생겨 병을 치료했지만 고치지 못했다. 그럭저럭 6년 세월이 흘렀다. 경술년(1910) 봄, 묘향산으로 가 내원암에서 여름철(하안거)을 지낸 뒤 가을엔 금선대로 가서 겨울과 여름 두 철을 지내고 가을(1911)엔 맹산 우두암에서 겨울을 지냈다.


다음해(1912) 봄이 왔다. 함께 살던 도반(사리)은 식량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고 나만 혼자 부엌에 앉아서 아궁이에 불을 붙이다가 홀연히 깨달았다. 그런데 그 깨달은 소식이 처음 수도암에서 개오할 때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한 줄기 활구 소식이 부딪히는 곳마다 분명했다(한암의 네 번째 깨달음, 확철대오).


그리하여 ‘아!’ 하고는 다음과 같은 연구(聯句)의 게송을 읊었다.


하지만 당시는 말세인지라 불법이 매우 쇠미하여 명안종사의 인증(印證)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화상께서도 머리를 기르고 유생의 옷을 입고서 갑산, 강계 등지를 왔다 갔다 하다가 이 해(1912)에 입적하시니 참으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이 한 토막 글을 써서 스스로 꾸짖고 스스로 맹서하노니 한 소식 분명하기를 기약하노라.


돌!


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부엌에서 불붙이다 홀연히 눈이 열렸네
이로부터 옛 길(祖師意)은 인연따라 맑았네.
만일 누가 나에게 달마 서래의를 묻는다면
‘바위 아래 흐르는 물, 그 소리 젖지 않는다’ 말하리.
삽살개는 나그네가 수상쩍어 짖어대고
산새는 사람을 조롱하듯 우짖고 있네.
만고의 빛 마음 달이여
하루 아침에 번뇌망상 쓸어 버렸네.

 

AND

 

1수. 관세음보살 여의주수 진언

물질적 풍요로움과 안락한 생활을 원할 때

옴 바아라 바다라 훔 바탁 (범어 - 옴 봐즈라 봐따라 훔파트 Om vajra vatara humphat)


2수. 관세음보살 견색수 진언 

온갖 불안 속에서 마음이 편해지기를 원할 때

옴 기니라나 모나라 훔 바탁 (범어 - 옴 끼를라라 모드라 훔파트 Om kirlara modra humphat)


3수. 관세음보살 보발수 진언 

온갖 아픈 병이 낫기를 원할 때

옴 기리기리 바라아 훔 바탁 (범어 - 옴 끼르끼르 바즈라 훔파트 Om kirkir vajra humhpat)


4수. 관세음보살 보검수 진언

모든 잡귀들을 항복시키기를 원할 때

옴 제세제야 도미니 도제 삿다야 훔 바탁 (범어 - 옴 떼세떼자 뚜뷔니 뚜데 사따야 훔파트 Om teseteja tuvini tude satdhaya humphat)


5수. 관세음보살 발절라수[바아라수] 진언

모든 잡귀들을 항복 시키기를 원할 때

옴 이베이베 이파야 마하 시리예 사바하 (범어 - 옴 디베디베 디뺘 마하 스례(스르예) 스바하 Om dibhedibhe dipya maha srye svahat)


6수. 관세음보살 금강저수 진언

모든 적을 항복시키기를 원할 때

옴 바아라 아니바라 닙다야 사바하 (범어 - 옴 바즈라 그니 쁘라 딥따야 스바하 Om vajra gni pra diptaya svaha)


7수. 관세음보살 시무외수 진언

모든 적을 항복시키기를 원할 때

옴 아라나야 훔 바탁 (범어 - 옴 즈라나야 훔파트 Om jranaya humphat)


8수. 관세음보살 일정마니수 진언

눈이 어두워져 밝은 눈을 갖기를 원할 때

옴 도비가야 도비바라 바리니 사바하 (범어 - 옴 뚜삐까야 뚜삐뿌라 바르디 스바하 Om tupikaya tupipra vardi svaha)


9수. 관세음보살 월정마니수 진언

심한 열병을 앓아서 낫기를 원할 때

옴 소싯지 아리 사바하 (범어 - 옴 슈시디 그르 스바하 Om susidhi gr svaha)


10수. 관세음보살 보궁수 진언

승진하거나 높은 관직을 얻기를 원할 때

옴 아지미례 사바하 (범어 - 옴 아차(짜)비레 스바하 Om acavire svaha)


11수. 관세음보살 보전수 진언 

빨리 착하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기를 원할 때

옴 가마라 사바하 (범어 - 옴 까마라 스바하 Om kamala svaha)


12수. 관세음보살 양류지수 진언

몸에 생긴 갖가지 병이 모두 낫기를 원할 때

옴 소싯지 가리바리 다남타 목다에 바아라 바아라 반다 하나하나 훔 바탁 (범어 - 옴 슈싯디 까르바르타남타 묵따예 바즈라 바즈라 반다 하나하나 훔파트 Om susitdhi karvartanamta muktaye vajra vajra vandha hanahana humphat)


13수. 관세음보살 백불수 진언

모든 나쁜 장애와 곤란을 없애기를 원할 때

옴 바나미니 바나바제 모하야 아아 모하니 사바하 (범어 - 옴 빠드미니 바가바떼 모하야 자가 모하니 스바하 Om padmini bhagavate mohaya jaga mohani svaha)


14수. 관세음보살 보병수 진언

모든 가족과 친족들이 원만하게 화합하기를 원할 때

옴 아례 삼만염 사바하 (범어 - 옴 그레 삼맘얌 스바하(스와하) Om gre sammamyam svaha)


15수. 관세음보살 방패수 진언

어떤 동물이나 맹수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기를 원할 때

옴 약삼나나야 전나라 다노발야 바사바사 사바하(범어 - 옴 야크삼 나다야 쉬찬드라 다두빠르야빠샤 빠샤 스바하 Om yaksam nadaya scandra dhaduparyapasa pasa svaha)


16수. 관세음보살 월부수 진언

언제 어디서나 관재를 당하지 않기를 원할 때

옴 미라야 미라야 사바하(범어 - 옴 미라야 미라야 스바하 Om miraya miraya svaha)


17수. 관세음보살 옥환수 진언

남녀불문하고 좋은 친구나 동료를 갖고자 원할 때

옴 바나맘 미라야 사바하 (범어 - 옴 빠드맘 미라야 스바하(스와하) Om padmam miraya svaha)


18수. 관세음보살 백련화수 진언

수많은 공을 세우고 온갖 공덕을 이루기를 원할 때

옴 바아라 미라야 사바하 (범어 - 옴 바(와)즈라 미나야 스바하 Om vajra minaya svaha)


19수. 관세음보살 청련화수 진언

다음 세상에 서방정토에서 태어나기를 원할 때

옴 기리기리 바아라 불반다 훔 바탁 (범어 - 옴 끼(키)르끼(키)르 바(와)즈라 부르반다 훔파트 Om kirkir vajra bhurvandha humphat)

20수. 관세음보살 보경수 진언

높고 큰 지혜를 얻고자 원할 때

옴 미보라 나락사 바라아 만다라 훔 바탁 (범어 - 옴 비스푸라다 락사 바즈라 만달라 훔파트 Om visphurada raksa vajra mandhala humphat)


21수. 관세음보살 자련화수 진언

부처님과 보살님을 친견하기를 원할 때

옴 사라사라 바아라 가라 훔 바탁 (범어 - 옴 싸라싸라 바즈라 까라훔파트 Om sarasara vajra karahumphat)


22수. 관세음보살 보협수 진언

땅속 깊이 묻혀 있는 온갖 보물을 얻고자 원할 때

옴 바아라 바사가리 아나맘나 훔 (범어 - 옴 바즈라 빠사까리 가나맘라 훔 Om vajra pasakari ganamamra hum)


23수. 관세음보살 오색운수 진언

한시바삐 불도를 성취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원할 때

옴 바아라 가리라타 맘타 (범어 - 옴 바즈라 까리라따 맘따 Om vajra karirata mamta)


24수. 관세음보살 군지수 진언

다음 세상에는 천신이 되어 하늘에서 살고자 원할 때

옴 바아라 서가로타 맘타 (범어 - 옴 바즈라 세카라루타 맘타 Om vajra sekhararuta mamta)


25수. 관세음보살 홍련화수 진언

다음 세상에는 사람 몸 받지 않기를 원할 때

옴 상아례 사바하 (범어 - 옴 샴그레 스바하 Om samgre svaha)


26수. 관세음보살 보극수 진언

경쟁 상대나 원수의 힘을 없애고자 원할 때

옴 삼매야 기니하리 훔 바탁 (범어 - 옴 삼마이야 끼니 하르 흠파트 Om sammaiya kini har humphat)


27수. 관세음보살수 보라수 진언

언제 어디서나 호법신장들이 호위를 하기를 원할 때

옴 상아례 마하 삼만염 사바하 (범어 - 옴 삼그레 마하 삼마얌 스바하 Om samgre maha sammayam svaha)


28수. 관세음보살 촉루장수 진언

어떤 잡신들의 농간에도 휘둘리지 않고 뜻대로 지배하기를 원할 때

옴 도나 바아라 햑 (범어 - 옴 두나 바즈라 하 Om dhuna vajra hah)


29수. 관세음보살 수주수 진언

빨리 부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원할 때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옴 아나바제 미아예 싯디 싯달제 사바하 (범어 - 나모 라뜨나뜨라야야 옴 아나바떼 비자야예 싣디싣다르테 스바하 Namo ratnatrayaya om anabhate vijayaye sidhisiddharthe svaha)


30수. 관세음보살 보탁수 진언

아름답고 뛰어난 목소리 갖기를 원할 때

나모 바나맘 바나예 옴 아미리 담암베시리예 시리탐리니 사바하 (범어 - 나모 빠드맘 빠나예 옴 암르땅감베 쉬르예 쉬르 땅르니 스바하 namo padmam panaye om amrtamgambhe srye sr tamrni svaha)


31수. 관세음보살 보인수 진언

뛰어난 말솜씨와 글솜씨 갖기를 원할 때

옴 바아라녜 담아예 사바하 (범어 - 옴 바즈라 네탐 자예 스바하(스와하) Om vajra netam jaye svaha)


32수. 관세음보살 구시철구수 진언

좋은 신들과 용왕이 보호하기를 원할 때

옴 아가로 다라가라 미사예 나모 사바하 (범어 - 옴 아크로 따라까라 비사예 나모스바하 Om akro tarakara visaye namosvaha)


33수. 관세음보살 석장수 진언

언제나 모든 생명체를 해치지 않기를 원할 때

옴 날지 날지 날타바지 날제 나야바니 훔 바탁 (범어 - 옴 날티날티 날타파티 날테 다야빠니 훔파트 Om nartinarti nartapati narte dayapani humphat)


34수. 관세음보살 합장수 진언

모든 존재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할 때

옴 바나만 아링하리 (범어 - 옴 빠드맘 그잘음 흐르 Om padmam gjalm hr)


35수. 관세음보살 화불수 진언

태어날 때마다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기를 원할 때

옴 전나라 바맘타 이가리 나기리 나기리니 훔 바탁 (범어 - 옴 짠(찬)다라 바맘따르 까르다끼르 다끼르니 훔파트 Om candara bhamamtar kardakir dakirni humphat)


36수. 관세음보살 화궁전수 진언

태어날 때마다 늘 부처님 세계에서 태어나기를 원할 때

옴 미사라 미사라 훔 바탁 (범어 - 옴 미사라 미사라 훔파트 Om misara misara humphat)


37수. 관세음보살 보경수 진언

두루 널리 공부하여 잊지 않는 총명한 머리 갖기를 원할 때

옴 아하라 살바미냐 다라 바니제 사바하 (범어 - 옴 아하라 사르바 비드야 다라 뿌디떼 스바하 Om ahara sarva vidya dhara pudite svaha)


38수. 관세음보살 불퇴금륜수 진언

지금 이 몸으로 깨닫기 전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기를 원할 때

옴 서나미자 사바하 (범어 - 옴 사나미차(짜) 스바하 Om sanamica svaha)

39수. 관세음보살 정상화불수 진언

나도 부처가 되리라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자 할 때

옴 바아라니 바아람예 사바하 (범어 - 옴 바즈르니 바즈람게에 스바하 Om vajrni vajramge svaha)


40수. 관세음보살 포도수 진언

풍요로운 과실수와 농산물 수확을 얻고자 할 때

옴 아마라 검제이니 사바하 (범어 - 옴 아마라 깜떼디니 스바하 Om amala kamtedini svaha)


41수. 관세음보살 감로수 진언

목마르고 배고픈 모든 중생이 겪는 고통을 없애고자 할 때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소로소로야 사바하 (범어 - 옴 수루수루 보라수루 보라수루 수루수루예 스바하 Om sulu sulu bholasulu bholasulu sulusuluye svaha)


42수. 관세음보살 총섭천비수 진언

어떠한 장애나 역경을 겪어도 반드시 모두 이겨내고자 할 때

다냐타 바로기제 새바라야 살바도따 오하야미 사마하 (범어 - 따다탸 아바로끼데스바라야 싸르바 두시자 우아미예 스바하 Tadyata avalokitesvaraya sarvadusiZa Uhamiye Sv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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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님 곧 많이 무더워질 것 같은데 건강관리 잘 하고 계신가요?
A. 더위를 식히려면 마음을 식혀야 더위가 식는다.

Q. 스님 선가풍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요?
A. 내가 보살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 사랑하고 싶은 것이 선가풍이다.

Q. 덕숭산은 스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A. 덕숭산은 자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성의 진체를 덕숭산으로 하여금 보게 됩니다. 자기 면목을 덕숭산을 통해서 보게 되는 곳입니다.

Q. 불교정화운동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불교정화운동에 한 일이 없어요.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중이 하는 일이요 역대 불조가 하던 일이기 때문에 나의 수행 자체가 불교 정화다.

Q. 어떻게 수행해야 잘 할수 있겠습니까?
A. 그 잘하려는 생각 그 생각이 장애니까 그런 장애를 다 제거해야돼.

Q. 스님께서 이전에 한국이 지도국가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A. 참선하는 보살들이 많이 있어야 해. 자성을 깨친 보살들이 많이 있어야 해. 불조가 다 자기 자성을 깨쳐서 후학들을 지도했어. 자기 자성을 깨치지 않으면 지도할 능력이 없어. 배우는 것 가지고는 한계가 있어. 자기 자성을 깨치면 우주가 다해도 설법은 남아 있어. 이 우주가 몇 번 없어졌다 다시 일어나더라도 그 설법은 그대로 남아있어.

Q. 재가불자들에게 경책이 될 수 있는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A. 모든 불자들이 부처님을 믿어서 불자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불자들이여. 부처님한티 무슨 불명을 얻고 가피를 얻어서 불자가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부처여.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늘 땅이 생기기 이전부터 원만구족한 상황이요.

한 발짝도 더 나가지도 말고, 뒤로 물러서지도 말고, 그대로 나가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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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도 도둑놈

붓다 2017. 4. 23. 02:26

 

[중앙승가대 대학원장 보각스님 법문 중에서 /bbs]

여러분, 복(福)이 뭡니까? 남을 기쁘게 하는 게 복이에요.
업(業)이 뭡니까? 남에게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이 업입니다.
저는 지금도 큰 병이 하나 있습니다, 무거운 병이 하나 있어요.
무슨 병인가? 누가 돈만 주면 웃음이 나와요~~


사실 주는 게 복이고, 받는 건 업인데.. 그렇죠?
우리가 받는 걸 좋아하지만 받으면 언젠간 갚아야 할 빚인데도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당장은 받는 게 좋지만
미래의 빚을 불리는 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병이 있다는 것은 몸뚱이병이 아니라, 아직도 이 마음에 탐심이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교도소에 법문하러 가는데 가 보면 나하고 동지들이 많아요.
옷 색깔도 나하고 비슷하고, 요즘은 아니지만 예전에 보면 고무신 신고..
기결수들은 머리 깎고 있고.. 나하고 행색이 비슷한 사람이 많아요 ㅎㅎ
그래서 "내가 당신들 만나면 동지애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여러분이나 나나 다 동업자다..
난 아직도 마음속에 욕심이 있고, 아직도 누가 험담을 하면 화가 나고, 아직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 하였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당신들한테 참회하고 회개하라고 말하겠는가?
다만, 나는 욕심이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해서 여기 나와 있고 당신들은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들어와 있는 것뿐이지, 내가 누구를 비난하겠는가?
그러니까 우리 함께 착한 일 하도록 노력해보자..
사실은 알고보면 나도 도둑놈이다.." ㅎㅎ

우리가 남들 잘못할 때 비난하고 흉보지만 정말 자기 마음속에 욕심을 없앤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가끔.. 내가 무능한 것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왜?
먹고 싶어도 누가 안 갖다 주잖아요?
받고 싶어도 능력이 있어야 누가 주지? 그렇죠? ㅎㅎ
여러분 가운데에도요, 누가 안 줘서 억지로 깨끗한 사람 많아요..
정말로 남 욕할 수 있는 자격은.. 주는데도 거절하고,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지
안 줘서 못 먹고,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을 착하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남을 비난하고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내 허물이나 잘못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날마다 자기 잘못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일본의 법연이라고 하는 스님은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내가 20년 동안 수행해서 하나 깨친 게 있다면 이제 정말로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는 데 20년 걸렸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갑니까?
정말로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포장된 자신이 아니라 솔직한 자신을 바라보려는 노력.. 이것이 공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복(福)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복은 임금도 못 가져가고, 도둑도 훔치지 못 하고, 강도도 빼앗지 못 하고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떠내려 가지 않고, 사나운 태풍에도 날라가지 않나니, 이 세상에 복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복 받는 일만 생각하지 말고, 복 짓는 일을 열심히 행하면..
저는 복과 업은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 순간도 그림자가 나를 놓치지 않는 것처럼 복을 지으면 그 복이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날마다 작은 복이라도 열심히 지으면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 아니겠습니까?

출처 : 다음카페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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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방장 설정 큰스님 경허대선사 어록강설 8회 中

 

마음을 스물한 가지의 더러움으로 물들인 사람은 불행해지고 나쁜 곳에 떨어진다.

1. 불같이 성내는 마음

2. 남을 해치는 마음

3. 게으른 마음

4. 들떠있는 마음

5. 의심하는 마음

6. 증오하는 마음

7. 사람과 사물을 꺼리는 마음

8. 가치 없는 일로 번민하는 마음

9. 시기하는 마음 (입이 삐쭉삐쭉하고 비꼬고 왕따놓는거)

10.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화내는 마음

11.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

12. 남에게 미안해 할 줄 모르는 마음

13. 허황한 마음 (본인의 역량만큼만 공부하고 살아야지)

14. 간사한 마음

15. 속이는 마음

16. 다투는 마음

17. 거만한 마음

18. 교만한 마음

19. 잘난체 하는 마음

20. 질투하는 마음

21. 탐욕스러운 마음

등이다.

참 공부를 하는 수행자는 자신을 살펴보아 더러움에 물든 마음이 있을 경우에는 지체 없이 밝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거의 있겠지만 나는 3,4,5,7,8,10,14 해당. 그 중 가장 걱정인 것은 3,8)

 

인생일세가 여기구과극하고 숙여초로하며 위여풍등하니라.

용진백계하야도 간신도두하야는 일퇴고골이로다.

념차무상신속하고 생사사대하야 급급여구두연하라.

생부지래처하고 사부지거처하야 어업식망망하고 기관분륜하며 신화탕요하야 사생육취가 탱잉우흉중이어늘 기불가외재아.

약미유진정참학인댄 여하저적생사업력하리오.

여차분명상득하야 공부불랑실이어다.

여상련락제견이 개시불조성실명회어니 불감이일언일구상기니라.

전일지교를 불감고부할새 자이우충이니라.

연이라타소치에 지시제설의상이라.

불무공연문자하고 설역무진개략여우하노라.

-경허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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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경

붓다 2017. 3. 28. 00:32

 

[하늘사람]

"무엇이 위로 솟는 것 가운데 최상이고,

무엇이 떨어지는 것 가운데 최상이며,

무엇이 걸어 돌아다니는 것 가운데 최상이고,

무엇이 말하는 것 가운데 최상인가?"

[다른하늘사람]

"종자가 위로 솟는 것 가운데 최상이고,

비가 떨어지는 것 가운데 최상이며,

소가 걸어 돌아다니는 것 가운데 최상이고,

아들이 말하는 것 가운데 최상이다."

[세존]

"명지가 위로 솟는 것 가운데 최상이고,

무명이 떨어지는 것 가운데 최상이며,

수행승은 걸어 다니는 것 가운데 최상이고,

깨달은 님이 말하는 자 가운데 최상이다."

*명지 : 밝음, 지혜

 

-상윳다니까야, 비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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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번뇌의 경

 

나는 과거세에 있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없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어떻게 지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세에 있을까? 나는 미래세에 없을까?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세에 어떻게 지낼까?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되어 무엇으로 변할까? 또는 현세에 이것에 대해 의심한다. 나는 있는가? 나는 없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있는가? 이 존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와같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여섯 가지 견해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겨난다. '나의 자아는 있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나의 자아는 없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자아에 의해서 자아를 지각한다.' 라는 견해사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자아에 의해서 무아를 지각한다.' 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무아에 의해서 자아를 지각한다.' 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 또는 이와 같이 '나의 이 자아는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체험하는데, 그 나의 자앙는 항상하고 항주하고 항존하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라는 견해가 생겨난다.

*여섯 가지 견해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영원주의와 허무주의의 단순한 이율배반을 나타낸다.

 

- 맛지마니까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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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가지 새김의 토대

 1) 몸에 대한 관찰

 2) 느낌에 대한 관찰

 3) 마음에 대한 관찰

 4) 사실에 대한 관찰

"걸어가면 걸어간다고 분명히 알거나, 서있으면 서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앉아있다면 앉아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누워있다면 누워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신체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취하든지 자세를 그대로 분명히 안다."

2. 네 가지 바른 노력

 1) 방지의 노력

 2) 버림의 노력

 3) 수행의 노력

 4) 수호의 노력

3. 네 가지 신통의 기초

 1) 의욕의 집중에 기반한 노력의 형성을 갖춘 신통의 기초

 2) 정진의 집중에 기반한 노력의 형성을 갖춘 신통의 기초

 3) 마음의 집중에 기반한 노력의 형성을 갖춘 신통의 기초

 4) 탐구의 집중에 기반한 노력의 형성을 갖춘 신통의 기초

4. 다섯가지 능력

 1) 믿음의 능력

 2) 정진의 능력

 3) 새김의 능력

 4) 집중의 능력

 5) 지혜의 능력

5. 다섯 가지 힘

 1) 믿음의 힘

 2) 정진의 힘

 3) 새김의 힘

 4) 집중의 힘

 5) 지혜의 힘

6. 일곱 가지 깨달음 고리

 1) 새김의 깨달음 고리

 2) 탐구의 깨달음 고리

 3) 정진의 깨달음 고리

 4) 희열의 깨달음 고리

 5) 안온의 깨달음 고리

 6) 집중의 깨달음 고리

 7) 평정의 깨달음 고리

7. 여덟 가지 고귀한 길

 1) 올바른 견해(정견) - 바르게 보기

 2) 올바른 사유(정사유) - 바르게 생각하기

 3) 올바른 언어(정어) - 바르게 말하기

 4) 올바른 행위(정업) - 바르게 행동하기

 5) 올바른 생활(정명) - 바르게 생활하기

 6) 올바른 정진(정정진) - 바르게 정진하기

 7) 올바른 새김(정념) - 바르게 깨어있기

 8) 올바른 집중(정정) - 바르게 삼매하기

 

- 맛지마니까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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