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거라
화두를 참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옛 조사(祖師)들이 그랬듯이, 경봉스님께서 특히 경계한 것도 망상과 졸음과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에 지겹도록 시달려서 스스로 용기를 잃고 물러서는 것이었다.
경봉스님께서는 참선 수행을 하려면 집에 주춧돌을 놓듯이 먼저 큰 원력(願力)을 세워서 대신심(大信心)을 일으키고, 옛 성현(聖賢)들 처럼 기필코 내 마음을 깨우치겠다는 대분발심(大憤發心)을 내어야 하며, 화두에 대한 큰 의심(大疑心)을 가져야만 부처나 조사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하시고, 이를 먼저 갖출 것을 당부하셨다.
경봉스님은 80 고령에도 밤을 새우며 정진하셨다.
선방(禪房) 수좌들이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 들어가거나 세 시간만 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이 시작되면,
스님은 수좌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밤새 헛기침을 하시거나 한밤중에 과자 봉지를 들고 선방으로 찾아가시곤 했다.
조는 사람의 등을 두드려 주고, 과자를 나누어 주시면서
간단한 선문답과 격려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특히 화두 공부가 잘 안 되어 찾아 오는 구도자가 있으면
스님은 여러가지 말로써 무섭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서 참 사람이 나온다."
"이 공부는 철저하게 생명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쪼록 한 생(生) 나오지 않은 요량하고 마음을 비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나무칼로 베듯 하지 말고 단박에 결판지을 일이다."
"쇠가 아무리 굳어도 열이 3천도가 되면 녹는다.
죽기를 각오하고 주인공에게 맹세를 하면서 공부를 해도 될듯말듯 한데,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못견뎌 하니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졸음이 오면 허벅지를 꽉 꼬집어 비틀어서 잠을 쫓아버리고 용맹을 떨치며 공부해야 한다."
"망상이 일어나거든,
'네 이놈! 네 말만 듣고 다니다가 내 신세가 요모양 요꼴이 되었으니 이제는 내 말 좀 들어봐라. 죽나 사나 한번 해보자.'
하고 용맹을 내어야 한다."
"업장을 녹이는 방법이 한가지 있다. 누가 자기를 보고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설혹 자기가 잘 했다고 하더라도,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절을 한번 하면 그 때가 바로 업장이 녹아질 때다.
잘못했다고 나무라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가슴에 꽉 차 있으면 업장이 녹아질 수가 없다. 그만 다 비우고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아무 생각없이 절을 하는 그때가 다겁다생에 지은 죄악이 막 녹아질 때다."
이유없는 참회는 바보의 행위일지 모르지만, 바보가 될 때 모든 업장은 해탈과 자유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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