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이 생에서의 과제는 수다원과를 얻는 것.
무지 맘에드는 부처님 짤^_^
깨어있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이 생에서의 과제는 수다원과를 얻는 것.
무지 맘에드는 부처님 짤^_^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는 쿼크이다.
핵 안에는 6개의 쿼크와 6개의 렙톤이 쌍을 이루고 있다.
업과 다운 쿼크, 참과 스트레인지, 뮤온과 뉴트리노, 탑과 바텀, 타우와 타우 뉴트리노
4년 전 누군가 나에게 불교는 왜 과학적이라고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옆집 종교는 무조건 자기를 믿으면 천국가고, 자기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극단적일뿐더러 단순화시켜놓은 것이다.
게다가 의문이 든다. 그럼 당신을 믿으면서 나쁜짓과 거짓을 일삼아도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내 생각은 결코 '아니다' 이다.
이 또한 내가 다른 수많은 종교 중에 오직 불교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하고.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고려대장경 잡아함경 중-
라고 하셨다.
천체물리학과 현대기술과 과학이 없이도 부처님은 이미 우주 만법을 깨치셨던 것이다.
지구상, 우주상에 진리는 오직 하나기 때문이고 그 진리를 통달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아
내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이 몸뚱이는 한시도 머물러 있음이 없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기 때문에 '나' 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서 또 한가지 탁 하고 깨달았다.
그런데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것은, 부처님 법이 외계인들에게도 해당이 될까하는 것이다.
지구인보다 훨씬 고도로 발달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외계인들의 영적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사진출처: KBS 대장경 천년특집 다르마 4부작
오하분결: 중생을 욕계에 묶어두는 족쇄
1. 유신견: 자아가 있다는 견해, 오온이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삿된 견해
2. 계금취견: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키면 해탈할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
3. 의심: 불법승 삼보나 계율, 연기법 등을 회의하여 의심하는 것
4. 감각적 욕망: 쾌락에 대한 욕망, 탐욕
5. 악의: 반감, 증오, 분개, 적대감 등의 성내는 마음
오상분결: 욕계는 벗어났지만 색계와 무색계에 묶어두는 족쇄
6. 아만: 내가 남보다 못하다, 낫다, 동등하다 하는 마음
7. 들뜸: 들뜨고 불안한 마음
8. 어리석음: 모든 괴로움과 해로움의 근본 뿌리로 사성제를 모르는 것
9. 색계욕: 감각적 욕망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물질의 세계와 그 느낌에 대한 집착
10. 무색계욕: 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정신세계나 그런 인식에 대한 집착
수다원
1. 유신견, 2. 계금취견, 3. 의심 세가지 족쇄를 끊은 성자
'흐름에 들어선 자' 라고도 한다. (흐름=팔정도) 팔정도의 수행 속에 완전히 들어간 사람, 성인의 무리에 합류한 사람이라는 뜻. 아무리 늦어도 여덟번째 생존을 받지 않는다. 일곱생 안에 아라한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수다원은 '파멸되지 않는 이, 결정된 이, 깨달음에 이르는 이' 라고도 불린다. 파멸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이상 악도(아귀, 축생, 지옥, 아수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다원이 되면 불, 법, 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회의적인 의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계를 잘 지키고 산다면 수다원의 자질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수다원이 되면 일곱가지의 성스러운 보물을 얻는다. (믿음, 계, 양심, 수치심, 지혜, 배움, 관대함)
사다함
1, 2, 3은 이미 소멸되었고 4. 감각적 욕망, 5. 악의는 많이 약화되었지만 미세하게 남아있고 오상분결도 남아있는 성자
사다함이란 '한 번 되돌아오는 성자' 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죽은 후 욕계에는 딱 한 번만 더 태어나서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게된다는 의미이다.
아나함
오하분결은 모두 사라지고, 오상분결 중 6. 아만, 7. 들뜸, 8. 어리석음이 약화된 성자
그러나 9. 색계욕, 10. 무색계욕은 남아있는 성자
아나함은 '되돌아오지 않는 성자' 라고 해서 불환이라고도 한다. 아나함은 죽은 뒤에 인간세계를 포함한 욕계에는 두 번다시 태어나지 않고 미세한 물질의 세계인 색계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 최상의 목표인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는다.
아라한
아라한은 열 가지 족쇄가 다 소멸되어 더이상 태어남이 없어 윤회하지 않는 성자로 해탈을 말한다. 완전한 성인으로서, 응공(공양받을 만한 분)이라고 한다. 아만심이 없기 때문에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번거로워할 일도 없고 들뜨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늘 고요하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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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아침
미뤄뒀던 청소를 위해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창문을 열었는데 못보던 까치둥지가 생겼다.
참 부지런도 하지, 조그만 부리로 저 많은 나뭇가지들을 모아다 둥지를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서 내 모습을 생각했다.
일할 땐 빠릿해도 게으를 땐 세상 더 없이 게을러빠진 몸뚱이에 지며, 또 게으름에 패배한 나를 자책한다.
계산하고 따지는 것 없이 마음이 일어났을 때 응당 행으로 옮겨야하는데 내 등은 왜 이리 침대를 좋아하는지
수행이라고 별 다른게 아닌 것 같다. 나를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것
부지런한 까치댁처럼
사성제와 팔정도
사제(四諦)라고도 함.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모니의 성도(成道) 후 자기 자신의 자내증(自內證)을 고찰하여 설한 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면, 사제설은 이 인연설을 알기 쉽게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체계를 세운 법문이다. 십이연기설이 이론적인 것임에 대해 사제설은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것이며, 오히려 실천을 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성도 후 좌선사유(坐禪思惟)에 의해 스스로의 깨침을 즐겼으나, 인연의 이치가 매우 어려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설법 방법을 연구하여 사제설을 고안하였다. 그가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比丘)를 상대로 처음 설법한 것이 사제의 가르침이다.
사제의 첫째는 고제(苦諦)이다. 고제는 불완전하고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이다. 이 고(苦)는 구체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애별리고(愛別離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를 합한 8고로 하고 있다.
이 중 애별리고와 원증회고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것, 그리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고뇌의 원인이 된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애증(愛憎)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뇌는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구부득고는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앞의 것과 같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고통들이다. 오온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를 개괄한 것으로, 오온(五蘊 : 一切法)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집착을 가진다면 모든 것이 고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둘째는 집제(集諦)이다. 집이란 집기(集起), 즉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위한 원인이므로 고의 원인이나 이유라는 뜻이 된다. 고의 원인으로서 ‘도처에서 열락(悅樂)을 추구하여 그치지 않는 갈애(渴愛)’를 뜻하는데, 십이연기설에서는 무명(無明)과 갈애를 고뇌의 원인으로 함께 보고 있다.
그러나 갈애는 무명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므로 그 속에 무명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갈애는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갈애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의 삼애(三愛)가 있다. 욕애는 감각적 욕구인 오욕(五欲)에 대한 갈애로서, 현실에 있어서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애욕을 말한다. 유애는 존재를 뜻하는 유(有)에 대한 갈애로서, 사후에 천국 등의 훌륭한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이다.
이것도 자기 중심적인 욕구이며, 천국 등도 윤회계(輪廻界)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무유애의 무유는 비존재, 즉 허무를 말한다. 어떠한 존재도 절대 확실한 안온세계(安穩世界)가 아니기 때문에 꿈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계(虛無界)를 안주(安住)의 땅으로 삼는 것을 무유애라 하는데, 무유애 또한 자기 중심적인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무아(無我)나 현세적 입장에서 볼 때 이 갈애는 번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고통의 원인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에게 맞으므로 탐욕을 일으키고, 맞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며, 그것이 다시 갖가지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셋째는 멸제(滅諦)이다. 멸제는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가리킨다. 즉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을 얻음을 말한다.
넷째는 도제(道諦)이다. 도는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원인으로서의 수행방법이며, 구체적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팔정도는
정견: 바르게 보고[正見]
정사유: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정어: 바르게 말하고[正語]
정업: 바르게 행동하고 [正業]
정명: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정정진: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정념: 바른 신념을 가지며[正念]
정정: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수행법이다.
이는 또 유(有)에도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수행법으로서 원시불교의 근본교의를 이루고 있다. 사제 중의 고는 생사과(生死果)이고, 집은 생사인(生死因)이며, 멸은 열반과(涅槃果)이다. 이는 다시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열기(還滅緣起)의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두 가지는 생사유전의 고통과 그 원인을 말하고 멸과 도의 두 가지는 유전을 벗어나 무고안온(無故安穩)의 열반과에 도달할 수 있는 환멸의 수행법을 말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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